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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제’ 메르켈, 미니 총선 벽 넘고 4선고지 밟나

입력
2017.05.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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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ㆍ쾰른 등 대도시 집중

인구 1800명 달하는 정치 요지

민심 풍향계 보여줄 ‘미니 총선’

2010년 州권력 쥔 사민당 맞서

메르켈 기민당 재탈환 노려

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와 아르민 라셰트 기독민주당 부당수 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대표가 지난달 뮌스터에서 열린 당 행사에서 당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뮌스터=EPA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와 아르민 라셰트 기독민주당 부당수 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대표가 지난달 뮌스터에서 열린 당 행사에서 당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뮌스터=EPA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명실상부한 유럽의 ‘여제(女帝)’이다. 2005년 11월 독일의 첫 여성 총리로 취임한 이래 11년 넘게 국내는 물론, 유럽 정치와 경제를 이끄는 리더로 우뚝 섰다. 2015년 메르켈은 사상 최악의 난민 사태로 유럽연합(EU)이 위기에 직면하자 제한 없이 난민을 받아들이겠다는 결단을 내려 반(反)이민 정서에 쐐기를 박았다. 금융위기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리스의 부채를 탕감해주자는 동정론에는 “허리띠를 더 졸라 매라”며 원칙을 고수해 3차 구제금융안을 관철시켰다. 그 해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메르켈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점증하는 테러 위협, EU를 떠나겠다는 영국의 홀로서기, 유럽의 대표자 독일을 못마땅해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 등 메르켈 앞에 놓인 난제는 여전히 많다. 하지만 내년에도 그의 뚝심이 빛을 발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9월 24일 예정된 독일 연방의회 선거(총선)의 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 4번째 대권 도전이다. 결과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14일 전초전 격으로 치러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 주의회 선거를 보면 메르켈의 앞날을 대략 점칠 수 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NRW 선거는 독일 정치지형의 변화를 예측하는 가늠자”라며 “메르켈이나 야당인 사회민주당(SPDㆍ사민당) 모두 사력을 다해 선거에 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르켈 앞날 좌우할 미니 총선

올해 독일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3개 주에서 의회 선거가 실시된다. 이미 3월 26일(현지시간) 끝난 자를란트 주의회 선거에서 메르켈이 이끄는 중도 우파 기독민주당(CDUㆍ기민당)은 40.7%의 지지를 얻어 29.6% 득표에 그친 사민당에 압승을 거뒀다. 이달에도 슐레스비히홀슈타인(7일), NRW 지방선거가 차례로 이어진다. 이 중 NRW 선거는 유독 ‘미니 총선’으로 불린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독일 최대 인구(1,800만명)와 유권자(1,320만명)를 자랑한다. 규모 면에서 자를란트(100만명)나 슐레스비히홀슈타인(290만명)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주도(州都)인 뒤셀도르프를 비롯해 쾰른, 뮌스터, 도르트문트 등 독일 대도시의 3분의 1이 몰려 있어 그간 민심의 풍향계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NRW 선거 결과가 독일 중앙정치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산업노동자가 많은 NRW는 전통적으로 사민당의 텃밭이었다. 그러나 2005년 노동시장 유연화를 내건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권의 ‘우향우’ 정책, 이른바 ‘하르츠 개혁’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사민당은 40년 만에 주정부 권력을 내줬고 메르켈은 여세를 몰아 연방총리직까지 꿰찼다.

지금은 사민당이 2010년 다시 정권을 되찾아 집권 중이다. 사민당은 2012년 선거에서도 한 때 메르켈의 대항마로 거론됐던 한네로레 크라프트 주총리를 내세워 39.1%의 득표율로 11.3%를 얻은 녹색당과 손쉽게 ‘적-녹’ 연정을 꾸릴 수 있었다. 기민당 지지는 26.3%에 불과했다. 기민당은 이번에 아르민 라셰트 부당수가 후보로 나서 정권 탈환을 노린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자이퉁의 해설위원 니콜라스 프리트는 미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현재 메르켈의 처지를 ‘폭설이 내리는 날 거리를 치우는 청소부’에 비유했다. 그는 “거리를 정돈하자마자 금세 쌓인 눈을 다시 쓸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를란트의 작은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NRW 선거에 전력투구하지 않으면 총선 결과도 자신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슬람ㆍ난민 문제를 풀어라

표심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지난달 23일 여론조사기관 인프라테스트디마프의 정당 선호도 조사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의 지지율은 각각 34.0%로 같았다. 한 달 전 조사에서 37.0%의 사민당이 기민당(30.0%)에 7%포인트 앞섰던 것과 비교하면 메르켈에 분명 호재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이슬람ㆍ난민 이슈를 꼽고 있다. NRW는 독일에서 무슬림 인구(전체의 2.78%)가 가장 많은 지역. 최근 몇 년간 이슬람권 난민 유입이 급증하면서 이들이 일으키는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2015년 세밑 쾰른에서 중동ㆍ북아프리카 출신 이주 남성들이 저지른 집단 성폭력ㆍ강도 범죄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 악화한 민심은 표심에 반영되고 있다. 반난민ㆍ이슬람을 표방한 극우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10%안팎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며 제3당 지위를 넘보고 있다. AfD는 지난 선거에서 원내 진입에도 실패했었다.

메르켈도 적-녹 연정의 안일한 치안대책을 연일 성토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초 뮌스터에서 열린 당 행사에 참석해 “NRW 주정부보다 범죄에 허술하게 대응하는 국가는 별로 없을 것”이라며 “사민당은 항상 정의를 말하지만 그것은 혁신 없이 작동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사민당은 수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사민당은 1월 일찌감치 유럽의회 의장을 지낸 마르틴 슐츠를 총리 후보로 낙점하고 지방선거 승리에 공을 들여 왔다. 슐츠의 유명세에 힘입어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자를란트주에서 낙승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결국 패한 데 이어, NRW 선거전에서도 지난달 10%포인트 넘게 벌어졌던 선호도 격차가 빠르게 좁혀졌다. 녹색당의 지지율 역시 5~10%대에 머물러 연정 구성조차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메르켈에 맞서기 위해 중도 유권자를 공략해야 할지, 보다 선명한 좌파 공약으로 기존 지지층을 끌어 안아야 할지, 슐츠와 사민당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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