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이러다 죽겠어요.” 농담 삼아 던진 후배들의 말이었지만 임효준(22ㆍ한국체대)의 몸은 거의 만신창이었다. 수술대에 오른 것만 무려 7번. 이미 포기했을 법도 하지만 ‘평창’이라는 두 글자만 각인돼 있는 그의 정신력은 신체를 지배했다. 그리고 불운의 대명사에서 부활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임효준은 10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10초485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네덜란드의 싱키 크네흐트(2분10초555)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이번에 해설위원으로 경기를 지켜 본 이정수의 올림픽 기록(2분10초949)을 0.464초 앞당긴 신기록이다. 함께 결승에 나선 황대헌(19ㆍ부흥고)은 아쉽게 넘어지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고, 서이라(26ㆍ화성시청)는 준결승에서 고배를 들었다.
이로써 임효준은 이번 대회 홈팀 한국의 1호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또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의 22번째 금메달을 안기며 효자 종목의 명성을 이었다. 아울러 2014년 소치 대회에서 노메달에 그쳤던 남자 쇼트트랙도 임효준의 인생사처럼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임효준은 금메달을 딴 뒤 “힘든 순간도 많았는데 특히 2년 전 허리 수술을 했을 때는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내 목표는 오직 평창올림픽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예선전 때 너무 떨렸는데, 이후 긴장이 풀렸다. 감독님께도 준결승만 통과하면 잘 될 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고 전했다. 이어 "아직 올림픽이 끝난 게 아니다"라며 "5,000m 계주만큼은 꼭 우승하고 싶다"고 남은 각오를 밝혔다.
임효준은 어드밴스(실격 행위를 한 선수로 피해를 입은 경우 다음 라운드 진출권을 추가로 얻는 것)가 속출하는 바람에 준결승에선 8명, 결승에선 무려 9명과 경쟁했지만 독보적인 기량 앞에 적수는 없었다. 그는 예선 4조에서 스타트 이후 선두로 달리다 9바퀴를 남기고 잠시 4위로 내려왔지만 6바퀴를 남기고 앞으로 재빠르게 튀어나와 2분13초891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 3조에는 중국 선수가 무려 3명이나 배정이 됐지만 황대헌과 나란히 1, 2위를 차지해 무난히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에는 캐나다의 백전노장 샤를 아믈랭을 비롯해 1,5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네덜란드의 싱크 크네흐트, 헝가리의 간판 샤올린 산도르 류까지 쟁쟁한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임효준은 레이스 초반 중하위권에서 황대헌과 선두 추격을 엿보다 9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나란히 속도를 올렸다. 4바퀴를 남기고 네덜란드의 크네흐트가 선두로 올라섰지만 임효준은 곧바로 크네흐트를 따돌리고 선두를 되찾은 뒤 안정된 질주로 여유 있게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강릉=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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