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세월호 본질은 처벌아닌 희생자 죽음에 대한 답변"
29개 도시 시민 1000명도 방문… 실종자 수색지원 촉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고 소설가 박민규씨는 세월호 헌정 산문집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에서 말했다. 그 말처럼 눈 뜨고 고통을 직시하자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3일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소설가 김애란씨가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마주했을 때였다. “한 실종자 가족은 폐기종으로 폐의 3분의 2를 잘라냈고, 가족 대신 시신을 수습해 왔던 경찰관이 자살하는 등 트라우마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위로의 말을 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후 김씨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수많은 약속을 들어왔을 실종자 가족들을 생각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얼굴을 쳐다보기도 힘드네요.”
세월호 참사 후 171일째 실종자 10명의 가족들은 진도 팽목항에서 여전히 시린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이들과 함께 하고자 전국에서 1,000여명이 ‘기다림의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버스 중 한 대에 소설가 김훈 김애란씨 등 문인 20여명이 탔다. 김연수ㆍ박민규ㆍ김애란씨 등이 함께 펴낸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다”는 문구에 발길이 움직인 이들이다.
이날 서울 450명을 비롯해 안산 광주 대구 등 29개 도시에서 출발한 1,000여명이 팽목항에 닿았다. 6월 13일부터 매주 금요일 무박 2일 일정으로 진도를 찾는 기다림의 버스 행사 중 가장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행사를 주최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ㆍ실종자ㆍ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실종자들을 찾기 위한 철저한 수색이 우선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정부의 수색 지원을 촉구하기 위한 자리”라고 밝혔다.
기다림의 버스에 오른 문인들은 많지만 문인 버스가 따로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인 송경동씨는 “김훈 선생님의 발의에 작가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게 함께하는 마음을 전해주자고 공감해 문인 버스 운행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직원 출퇴근용 45인승 버스를 제공했고, 이 소식이 알려지자 당초 10여명이었던 신청자가 20여명으로 늘었다.
3년 전 안산 단원고 인근 선감동에 작업실을 마련한 김훈씨는 “안산 합동분향소에도 수 차례 다녀왔는데 고교생들의 예쁜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바라보며 절망적인 감정이 들었다”며 학생들이 당한 참사에 대한 속내를 꺼냈다. 그는 “단원고 생존자 학생이 안산지법에서 ‘나는 선원의 처벌을 바라기보다 내 친구들이 왜 죽었는지 듣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 말이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평론가 권희철씨는 “고립되고 잊혀질까 두려운 희생자 가족들에게 ‘당신들이 알아서 추스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인 김행숙씨는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너무 많은 민낯을 목격했고, 대통령의 눈물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는 등 많은 거짓말을 들었다”며 “그 민낯에 다시 가면을 씌우고 없었던 일로 되돌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오후 7시 30분쯤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은 거센 바람에 맞서 담요를 뒤집어쓴 채 팽목항에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까지 왕복 3㎞를 행진했다. ‘철저한 수색이 원칙이다’ ‘함께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진실과 기다림의 침묵행진 벌었다. 관제탑 앞에서 “철저한 진실규명이 되어야 한다”고 구호도 외쳤다.
이후 이어진 팽목항 문화제에서는 문인들은 ‘눈먼 자들의 국가’와 작가 305명의 한 줄 발언 모음집 ‘304(사망자, 실종자를 합한 숫자) 낭독회’를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또 ▦유가족들의 발언 ▦풍등 날리기 ▦김행숙 허은실 시인의 시 낭송 ▦강허달림 등 초대가수들의 공연 ▦방송인 김제동씨의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기다림의 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팽목항에는 따로 움직인 시민 100여명이 먼저 와 있었다. 한 50대 여성은 팽목항 등대에서 실종자의 유류품을 어루만지며 흐느꼈다. 단원고 고 최성호군의 아버지 경덕씨는 “오늘 날씨가 내가 팽목항에 왔던 4월 17일과 너무 흡사하다. 우리가 여기서 왜 아직도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어야 하나. 여러분들이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실종자 권재근씨의 형 오복씨는 “수색작업이 더디고 혹시나 동생을 못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하다. 최근 들어 정치권과 국민들의 관심도 시들해 불안했다”면서 “유명한 문인들과 전국 각지에서 국민들이 실종자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먼길을 오니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실종자들의 이름을 함께 소리 높여 불렀다. 차디찬 진도 바다에는 아직 단원고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 허다윤 황지현 학생, 고창석 양승진 교사, 일반인 승객 이영숙씨,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 등 10명이 남아 있다.
진도=박경우기자 gwpark@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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