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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수개월 공들인 인권헌장 '수상한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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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수개월 공들인 인권헌장 '수상한 파기'

입력
2014.11.3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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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던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

시민위서 표결로 통과되자 시 "합의 실패" 이유로 폐기 결정

시민위 "뒤늦게 절차 운운" 비판, 기독교 반발 등 동성애 이슈 부담

서울시가 성소수자 권리 보호 조항 삽입 여부로 논란을 빚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마지막 시민위원회를 개최한 지난 달 28일 조항 삽입에 찬성 및 반대하는 시민이 나란히 시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성소수자 권리 보호 조항 삽입 여부로 논란을 빚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마지막 시민위원회를 개최한 지난 달 28일 조항 삽입에 찬성 및 반대하는 시민이 나란히 시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성소수자 차별 금지조항’을 놓고 갈등을 빚어온 ‘서울시민인권헌장’을 결국 폐기하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가 30일 합의방식을 문제 삼아 폐기를 결정하자, 실행기구였던 시민인권헌장 제정시민위원회는 즉각 “시가 비상식ㆍ비민주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반발했다. 일각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동성애 이슈에 정치적 부담을 느껴 시민인권헌장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은 이날 오전 브리핑을 열고 “시는 사회적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전원합의방식을 요청했지만 표결이 이뤄졌다”며 “표결처리는 합의실패로 판단, 시민인권헌장은 더 이상 추진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현재 안은 자연스럽게 파기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문제가 된 조항은 ‘차별금지’를 다루는 제4조다. 성 소수자단체는 ‘성별ㆍ종교ㆍ나이 등 차별금지 사유와 함께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적시한 1안을 지지했지만 기독교계 반(反)동성애자 단체들은 ‘서울 시민은 누구나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포괄적으로 다룬 2안을 지지하며 대립해왔다.

시민위원회는 11월 28일 문안을 확정하기로 하고 해당 조항을 표결에 부쳐 1안 60표, 2안 16표로 1안을 통과시켰다. 인권헌장에 오를 50개 조항 중 각분과별 토론에서 이견 없이 합의된 45개 조항은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지만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 등 미합의 조항에 대해서는 표결에 부치기로 방침을 정한 데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시는 “(만장일치에 의한) 합의로 도출된 안이 아니고 164명의 시민위원 중 절반 이상이 불참하거나 퇴장해 정족수에 못 미쳐 투표는 무효”라고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위는 성명서를 통해 “서울시는 약속대로 시민이 만든 인권헌장을 선포하고 이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면서 “오랜 기간 토론의 결과로 나온 시민인권헌장을 즉각 발표하고 이행하라”고 반발했다.

논의 실무를 총괄한 문경란 시민위 부위원장은 “오랜 기간 시민들의 헌신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 확정한 사안을 이제 와서 시가 일방적으로 폐기하겠다고 하니 매우 당혹스럽고 불쾌한 심정”이라면서 “회의 마지막 날에 와서 시가 투표가 아닌 전체 합의 방식으로 결정해달라고 통보한 것이나 합의 규정에도 없던 정족수를 운운하며 절차를 문제 삼는 것은 결국 시민 대표자들이 도출한 결과를 부정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시민위원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시민헌장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서울시가 돌연 입장을 바꾼 것과 관련, 시의 정무적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 전문위원은 “최종 합의안이 도출되기 직전 안경환 시민위원장 등이 박 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박 시장이 시민위가 동성애 조항에 대해 최종 합의를 해도 시가 이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시사했다고 들었다”면서 “반대 여론이 확산되고 기독교 단체의 반발이 격화하자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울시 고위 간부는 “정치적 판단이 있었다면 애초부터 갈등이 예상됐던 시민인권헌장을 추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정무적 판단과 별개로 절차적 합의 부분이 미흡하다고 판단해 보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울시는 8월부터 지역, 성별, 연령을 고려해 무작위로 공개 추첨한 시민위원 190명을 위촉(26명 중도사퇴)해 총 6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시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맞춰 시민인원헌장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합의가 무산됨에 따라 계획이 무기한 연기됐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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