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사진으로 과시하기보다
아침상ㆍ침대 위 소설책 등
설정된 일상 사진 주로 올려
취향ㆍ재능 돋보이게 자기 표현
#. 자연스레 구김이 간 흰 천 위에 놓여진 붉은 사과 한 알. 먹음직스러운 토스트 한 쪽. 그리고 커피 한 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이 사진 한 장에 ‘좋아요’라고 한 이가 760명이 넘는다. “사진느낌 너무 좋아요” “러블리한 조합이고요” 등 댓글도 줄을 잇는다. 직접 차린 아침상의 풍경을 찍어 올린 이는 서울 서교동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최현정(33)씨. 그의 일상을 공유하는 팔로어(해당 SNS계정을 등록해 보는 사람)만 4만2,000여명에 달하는 SNS 상의 유명인이다.
2030 세대는 SNS로 자신을 드러내는데 적극적이다. 종종 ‘자랑질’이나 ‘허세’란 비아냥도 듣지만 이들은 이런 식의 표현 또한 세상과의 소통이라 여긴다.
그런 2030 세대의 자기 표현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좋은 차를 타고, 명품가방을 든 사진으로 자신을 ‘과시’했다면 최근에는 자신만의 취향이나 경험, 재능 등을 담은 사진으로 타인과 ‘차별화’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나 명품 가지고 있어”고 하면 오히려 인기가 없고, “이런 곳에서 차 한잔 하는 여유가 있다”고 하면 ‘좋아요’가 쏟아진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듯 비슷한 일상과 관심사라도 SNS상에서 좀 더 ‘있어 보이도록’ 만드는 능력, 일명 ‘있어빌리티’(있다와 능력을 뜻하는 영어단어 Ability를 결합한 신조어)가 2030 세대의 필수능력이 됐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전달 대상이 광범위한 SNS상에서 이런 능력은 굉장히 중요해졌다”며 “최근엔 단순한 물건보다 자신의 센스나 경험을 드러내려는 욕망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사진 NO, 나만의 취향 담긴 사진 YES
그저 지나치는 일상을 무심하게 찍은 듯한 최씨의 SNS 사진들은 사실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작품이다.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건지려고 20~30번씩 셔터를 누른다. 사과, 커피잔, 신문, 꽃, 책 등 소품 하나도 허투루 고르는 법이 없다. 그렇게 매일 수십 장의 사진을 찍은 후 마음에 드는 2,3장만 추려내 SNS에 올린다.
최씨는 “내가 봤을 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사진을 찍어 올린다”고 말했다. 활짝 핀 작약 다발을 들고 있는 사진, 침대 위에 놓여진 소설책과 화장품을 찍은 사진, 도마 위에 정갈하게 자른 라임 사진, 햇빛을 쬐는 사진 등이다. 최씨는 “단순히 ‘나 이렇게 잘 살아요’라고 자랑하려고 올리는 건 아니다”라며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나만의 관점이 들어간 사진으로 남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SNS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최씨의 SNS에선 유명장소나 친구들과의 사진, 명품 사진 등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누구나 돈만 있으면 사거나 갈 수 있는 대상보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일상을 근사하게 찍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패션, 인테리어, 음식 등에 관심이 많은 항공사 승무원 이모(33)씨는 SNS에 그날 정성껏 차려 입은 옷, 예쁘게 놓인 커피와 책, 직접 꾸민 집안 풍경 등을 담은 사진을 주로 올린다. 이씨는 옷 한 벌을 고르기 위해 수십 개 온라인쇼핑몰을 둘러보고, 그릇 같은 인테리어 소품을 사기 위해 해외 출장 때 벼룩시장도 찾는다. 친구들과 안부를 주고 받기 위해 SNS를 시작했다는 이씨는 “이젠 단순한 기록의 의미보다 어떻게 하면 옷을 예쁘게 입을지, 어떻게 음식을 놓으면 센스 있어 보일지 고민하면서 SNS를 한다”며 “내가 좋아하는 걸 지인들과 공유하고 대중에게 자랑하는 기분도 들어서 즐겁다”고 말했다. 그의 SNS 팔로어 2,000여명 중 실제 친분이 있는 이들은 2%(40명)에 불과하다. 그는 “사진을 가져가 나를 사칭하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유명세에 시달린다”면서도 “그만큼 다른 사람이 내 삶을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나만의 재능 전시장
2030 세대들은 SNS에서 자신만의 재능도 한껏 뽐낸다. 직장인 권보람(35)씨는 SNS에 육아를 하면서 겪는 기쁨과 감동, 여러 고충을 만화로 귀엽게 그려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4월 SNS를 시작한 그의 팔로어 수는 3만6,300여명에 달한다.
권씨는 “인터넷에 웹툰을 올리기도 했지만, SNS처럼 반응이 폭발적이지는 않았다”며 “SNS상에서 잘 그린다는 칭찬과 내용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육아를 하면서 정보도 없었고, 밖에 나가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들었는데, 위로 삼아 시작한 만화가 인기를 끌면서 SNS를 즐기게 됐고, 지금은 만화책을 내볼까 하는 욕심도 생겼다”고 덧붙였다.
SNS로 육아일기를 쓰는 박현규(31)씨도 2만6,000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유명인사다. 처음엔 일상을 기록하려고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자신만의 요리법 등 직접 개발한 육아 노하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게 됐다. 박씨의 SNS를 찾아오는 이들은 유익한 정보를 얻었다며 고마워한다. SNS 입소문 덕에 그는 최근 이유식 관련 책을 냈고,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방법 등을 소개하는 책도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SNS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 같다”며 “글솜씨도 부족한데 작가까지 됐다”고 웃었다.
능력일까 허세일까
이처럼 SNS 활동은 자신만의 개성과 센스를 돋보이게 하지만 한편에선 여전히 허세 부리는 사람, 관심종자(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 등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최현정씨는 “어떤 사람들은 사진을 보고 ‘시간이랑 돈 많아 좋겠다’는 식으로 공격한다”며 “SNS를 못하는 사람들은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예전엔 여행을 다녀와도 앨범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몰랐지만, 지금은 SNS에 올리는 순간 사람들이 부러워해준다”며 “SNS 소통이 늘면서 개인의 능력이나 경험 등이 돋보이게 된 건 긍정적이지만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과시를 위해 불필요한 소비도 부추길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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