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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쫄깃 퀴즈의 맛! 금쪽같은 점심시간도 기꺼이 쪼갠다

입력
2018.08.15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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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ㆍ저녁 하루 두 차례 15분 내외 

 10~12 문제 내고 바로 상금 지급 

 “답 고르는 5초의 짜릿함이란…” 

 선풍적 인기에 접속 20만명 넘기도 

 맞히는 사람 많아 큰돈 안 되지만 

 마치 TV 퀴즈쇼 출연한 듯 ‘소확행’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학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자 서경환씨가 모바일 퀴즈 어플 '잼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학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자 서경환씨가 모바일 퀴즈 어플 '잼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아, 아, 아~~ 부르르르르으… 스트로늄 스트론듐, 튬? 오늘 문제 정말 어렵네요.”

10일 낮 12시쯤, 34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행인도 뜸한 서울 강남구 학동 식당 골목의 S빌딩 지하 1층. 한 남성이 밥때도 놓친 채 입을 푸느라 여념이 없었다. 15㎡ 남짓한 좁은 방에는 사람 4명을 포함한 모니터와 컴퓨터, 환하게 밝힌 조명이 근근이 찬바람을 보내는 소형 에어컨을 무시하듯 열기를 뿜어댔다.

“과학용어는 발음이 조금만 틀려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해요.” ‘소박한 방송국’ 스튜디오 구석에 앉은 작가가 나직하게 조언한다. 크로마키 천 앞에 서 있던 남성은 짧게 답한 후 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내 목을 축였다. 그나마 위로가 됐던 에어컨이 시끄럽다는 이유로 꺼졌다. 그리고 12시 30분,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잼형, 잼오빠, 서경환입니다~” 남성의 경쾌한 인사말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잼 라이브’를 통해 전송됐다. 3분 전만 해도 3,000명 수준이던 접속자 수는 순식간에 8만명을 넘어섰다.

15분 남짓한 방송시간 동안 총 12회의 문제를 모두 맞힌 이는 모두 670명. 이날 400만원이었던 총 상금이 670분의 1인 5,970원씩으로 쪼개져 분배되면서 쇼는 끝났고 채팅창에서 한바탕 수다를 떨던 이용자들은 신기루처럼 일상으로 사라졌다.

 #동시접속자수가 20만? 

회사원 배형순(45)씨는 모바일 퀴즈 마니아다. 거의 매일 점심 퀴즈 앱에 접속하는 건 물론 주말 저녁에 진행되는 방송도 웬만해서는 놓치지 않는다. 그는 “모바일 퀴즈는 어디서든 할 수 있고 객관식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며 “주중의 점심시간에는 동료들이랑 같이 스마트폰을 들고 한데 몰려서 퀴즈에 열중하는데 중간에 전화가 오면 짜증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모바일 퀴즈쇼가 밥 먹고 커피 한잔 하기도 빠듯한 직장인 등 젊은 층의 ‘점심시간 킬러’로 존재감을 굳히고 있다. 금요일이었던 지난 10일 오후 12시 30분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된 ‘잼 라이브’ ‘더 퀴즈라이브’ ‘페이큐(팟티)’ 등 3개 애플리케이션이 모은 이용자 수만 20만명이 훌쩍 넘었다.

모바일 퀴즈 분야의 선두를 달리는 3개 앱의 진행 방식은 거의 비슷하다. 매일 점심 또는 저녁 15분 안팎의 짧은 시간 동안 10개 내지 12개의 객관식 퀴즈를 풀고, 모든 문제를 푼 사람들끼리 그날 제시된 최소 1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에 이르는 상금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신속한 정답 공개는 물론 실시간으로 문제를 맞힌 사람과 틀린 사람의 숫자를 확인할 수도 있다. 제작진은 눈치만으로도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는 물론 정치ㆍ사회ㆍ경제ㆍ과학ㆍ문화ㆍ체육 등 다양한 분야의 심도 있는 문항까지 난이도를 달리해 제출한다. 상금을 기업 협찬을 통해 받을 경우에는 해당 기업의 상품이나 브랜드에 관한 문제가 나오기도 한다. 잼 라이브의 경우 지난 5월 기업 협찬을 받아 상금 1,000만원을 걸고 진행한 방송에는 동시 접속자 수가 2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경쟁자가 몰리는 바람에 그날 12문제를 모두 맞힌 이용자도 3,770명이나 돼, 1인당 적립금은 2,652원에 머물렀다.

매일 낮 12시30분에 시작하는 모바일 퀴즈 '잼라이브'에서 오답 시 나오는 화면.
매일 낮 12시30분에 시작하는 모바일 퀴즈 '잼라이브'에서 오답 시 나오는 화면.

 #긴장감, 상금…무엇보다 개방성 

식당 앞에서 줄 서는 시간도 아까워 1분이라도 일찍 나와 밥을 먹고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은 마음은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모두가 마찬가지. 이들의 금쪽같은 점심 시간을 퀴즈에 헌납하게 만드는 힘은 뭘까.

주부 김모(35)씨에게 모바일 퀴즈의 매력은 ‘긴장감’이다. 김씨는 “문제가 던져지고 나서 답을 찍을 때까지 주어지는 5초 동안 마음을 졸이는 기분을 즐긴다“며 “수천, 수만 명이 틀린 문제를 내가 맞혔을 때도 정말 짜릿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밥 시간을 쪼개가며 탐닉하는 이유는 퀴즈가 주는 지적 유희뿐만이 아니다. 명확한 실물적 보상, 상금 또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강력한 동기가 되고 있다.

실제로 각 앱이 공개한 전체 상금 순위(10일 기준)를 보면 페이큐의 경우 1위는 168만1,841포인트, 2위 167만2,321포인트, 100위 19만7,452포인트이다. 잼 라이브는 1위가 103만4,442원, 2위가 54만4,585원이고 100위는 14만4,171원이라고 공개하고 있다. 더 퀴즈라이브의 경우는 지난 5월 3일 승자독식 방식의 ‘서바이벌’ 특집방송을 통해 28문제를 맞힌 1인이 모 금융기업이 협찬한 상금 1,000만원을 거머쥐기도 했다. 각 앱이 지급하는 포인트나 캐시는 현금과 1대 1로 환산되며 5,000~5만원 수준 이상이면 출금이 가능하다.

일확천금을 꿈꾸기에는 부족하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금 경쟁을 둘러싼 이용자들의 노력도 가지각색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라이브퀴즈 정답 공유사이트. 생방송으로 퀴즈쇼가 진행되면 문제가 제출되고 답안을 선택하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사이트에 접속한 이용자들이 먼저 예상 답안을 투표하는 방식이다. ▦정확하게 아는 것만 투표하기 ▦투표 실수에 대한 과도한 비난 행위는 강제 퇴장 등 나름의 규칙도 있다. ‘집단 지성’에 기대고 있는 셈이지만 이용자들의 허를 찌르는 문제를 내려 밤낮없이 고민하는 제작진 또한 이걸 모를 리가 없다. 그 밖에도 기출문제를 공유하거나 라이브퀴즈쇼에서 다수의 우승 경력자들이 모여 있다는 오픈 채팅방 등도 운영되고 있다.

점심시간 유흥거리에 정색하고 달려들기보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위해 상금을 노리는 이들에겐 자기만의 눈치싸움도 벌어진다. 회사원 전민석(30)씨는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사람들이 정답이라며 번호나 답을 채팅창에 올리는데, 여기서 언급되는 빈도가 가장 적은 걸 답으로 찍는다”고 말했다. 최후의 승자가 적을수록 본인에게 돌아오는 상금이 많아지니 이용자들이 의도적으로 ‘역정보’를 흘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바일 퀴즈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개방성이다. 장예원(30ㆍ약사)씨는 “단순히 문제를 시험 풀 듯 푸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호스트가 진행하는 라이브에 참여하게 되면 마치 TV 퀴즈쇼에 참여 하는 기분이 들어 더 즐겁다”고 했다.

문화평론가인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많은 대중이 퀴즈쇼에 관심을 갖지만 대중의 참여가 가능한 방송사 프로그램이라도 따로 시간을 내 예심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구조였다”며 “누구나 접근 가능한 모바일 퀴즈쇼의 라이브 방송은 그런 벽이 없을 뿐 아니라 마치 옛날 퀴즈 프로그램 방영 시간을 기다리는 아날로그적 정서까지도 기술적으로 만족시켜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모바일 퀴즈 붐은 예고된 인기? 

지난해 8월 애플의 앱 스토어에는 미국 IT 콘텐츠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했다. 양방향 TV쇼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이 애플리케이션의 이름은 ‘HQ 트리비아(Trivia)’. 2017년 10월까지만 해도 이용자 수가 1만명에 그쳤지만 이후 입소문 등을 타고 무섭게 확장하면서 올해 1월 기준 동시접속자수가 40만명을 돌파했다. 진행자가 등장하는 15분가량의 쇼로, 점진적으로 난이도가 올라가는 삼지선다식 퀴즈 12개의 정답을 맞혀야 하고 상금은 모든 문제를 맞힌 이용자가 나눠 갖는 방식으로 최근 우리나라 모바일 퀴즈 애플리케이션의 원조 격이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은 지난 2월 정기 보고서를 통해 HQ 트리비아의 주요 성공 요인 중 하나가 실시간 스트리밍 동영상이 이용자에게 TV 방송의 퀴즈쇼에 실제 참여한 듯한 느낌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IT 콘텐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래 퀴즈쇼는 방송사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컸지만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모바일로 전환이 가능했다”며 “대중적 퀴즈쇼의 생명이 답안 유출 가능성을 최소화한 생방송 진행에 있다고 볼 때 그 한계를 기술적으로 극복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풀어야 하는 숙제 

단시간에 수십만의 이용자가 몰리면서 광고 효과를 노리고 협찬에 나서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잦아졌지만 그렇다고 모바일 퀴즈쇼 업계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기업의 협찬은 모바일 퀴즈의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하지만 프로그램의 상업성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용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민석 씨는 “수익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건 이해하지만 '협찬 티'가 나는 문제의 비중이 커지면서 최근 들어 덜 하게 됐다”며 “(협찬 브랜드나 상품 정보는) 사전에 알아두기도 애매해 문제에 매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노골적인 광고성 퀴즈쇼를 덜 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자금에 기대야 하는 만큼 규모가 큰 기업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한 모바일 퀴즈 앱 관계자는 “대중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공정함이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출제 내용을 검토하고 보안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게 될 것”이라며 “협찬 분야를 다양화 하면서도 이용자들이 알아두면 좋을 만한 내용을 세심하게 추려 내는 게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정혜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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