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났으니 다시는 헤어지지 맙시다/···다시는 수난의 역사, 고통의 역사, 피눈물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맙시다/ 또다시 되풀이 된다면 가슴이 터져 죽습니다. 민족이 죽습니다/반세기 맺혔던 마음의 응어리도/ 한 순간의 만남으로 다 풀리는 그것이 혈육입니다/ 그것이 민족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7일 판문점 회담 만찬에서 인용한 이 구절은 북한의 계관시인 오영재가 2000년 6ㆍ15 공동선언 두달 뒤 서울에서 열린 1차 이산가족상봉 때 남한의 동생 등 가족을 만난 뒤 쓴 '다시는 헤어지지 맙시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 1935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오씨는 한국전쟁 때 16세 인민의용군에 입대했다가 휴전 후 북한에 남아 천리마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 천리마 기수의 생활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990년 남녘에 사는 어머니 소식을 듣고 쓴 연작시 '아 나의 어머니'에서 '늙지 마시라'를 열창했고, 1995년 어머니의 작고 소식을 접하자 통한의 사모곡을 읊었다고 한다. 가족상봉 때 눈물을 쏟으며 통곡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판문점 만찬사에 등장한 그의 시를 듣고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 짧지만 굵은 만남이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드라마였고 놀람과 감동의 여운은 크고 넓었다.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손잡고 넘나들고, 나란히 의장대를 사열했으며, 오랜 친구처럼 도보다리를 함께 걷고, 전 세계 언론이 생방송하는 가운데 둘만의 '벤치회담'을 가졌다. 오전 9시29분 맞잡은 두 정상의 손은 만찬에 이은 환송행사가 끝난 밤 9시26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떠날 때까지 거의 떨어질 줄 몰랐다. 통역이 필요 없었으니 내밀한 얘기도 많이 오갔을 것이다. 판문점 선언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 문 대통령은 건배사에서 '한 가마 먹은 사람이 한 울음 운다'와 '길 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 는 2개의 북측 속담을 인용하며 민족 동질성과 공동번영을 강조한 뒤 "김 위원장과 나는 이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좋은 길동무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53년생 대통령과 84년생 위원장이 한 세대를 뛰어넘어 '길동무'가 된 것은 분단의 세월이 길었던 만큼 통합의 역사를 만드는 작업이 선언 하나로 불쑥 다가오지 않음을 뜻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하지 않는가.
이유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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