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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 어둠을 탈출하다

입력
2014.08.1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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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닷컴이 연속 촬영한 사진을 이어붙여 만든 타임랩스(Time Lapse) 영상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포토 플레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첫 회 '타투, 어둠을 탈출하다'는 최근 열풍이 불고 있는 타투를 주제로 연속촬영한 2,643장의 사진으로 제작한 영상입니다. - 편집자주

하얀 장갑을 낀 손이 권총처럼 생긴 기계를 든다. 발로 스위치를 밟자 ‘찌이이잉~’ 미용실 이발기 같은 소리가 퍼진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있던 그녀의 볼에 분홍빛 핏기가 돈다. 하얀 손이 기계의 코 끝에 검정색 잉크를 묻힌다. 코를 그녀의 왼쪽 팔로 가져간다. 하얀 피부에 까만 잉크가 닿자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간다. 하얀 손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의 팔에 차분히 그림을 그려 나갈 뿐이다. 30여분이 지났을까. 그녀의 팔에는 예쁜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타투이스트 D의 작품을 포토 콜라주로 재해석했다.
타투이스트 D의 작품을 포토 콜라주로 재해석했다.

지난 8일 서울 강남의 한 타투샵에서 20대 직장인 이모씨가 왼쪽 팔에 나무를 새기고 있었다. 두 번째 타투다. 그녀는 지난 2월 ‘답은 여기에 있다. 쫓기지 말 것’이란 한글 문구를 등에 새겼다. 그녀는 “항상 지닐 수 있고 평생 변하지 않는 것을 갖길 원했다”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나에게만 의미있는 타투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타투는 각오, 다짐이다. 이번에 왼팔에 새긴 타투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나무처럼 내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 뿌리를 바탕으로 자신을 잘 가꿔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도안 제작 - 크기 선택 - 전사 - 시술의 과정을 거쳐 타투가 완성된다.
도안 제작 - 크기 선택 - 전사 - 시술의 과정을 거쳐 타투가 완성된다.

타투 인구 100만명(한국타투협회 추정) 시대, 조폭을 상징했던 문신이 가냘픈 소녀의 감성을 표현하는 매개로, 자신과의 영원한 약속의 상징으로, 예술성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변신하고 있다. 과거 문신은 굵은 선에 어둡고 원색적인 용, 호랑이 이미지가 주류였다. 문신의 이미지는 위압감의 상징이자 범죄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일반 사람에게는 그저 ‘비호감’의 대상이었다. 병역 기피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런 문신은 대부분 ‘베끼기’방식으로 시술됐다. 문신으로 유명한 그림이나 이미지를 본떠 그대로 새겨 넣는 식이다. 시술소를 찾는 이들의 요구는 ‘이대로 해달라’가 대부분이었다. 문신시술자는 그저 잉크를 새겨 넣는 ‘기술자’에 불과했다. 실력이 좋은 기술자란 ‘손님’이 요구한 그림을 탈나지 않게 옮기는 이다. 홍대 인근에서 15년 넘게 문신을 새겨온 김모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손님 대부분이 조폭이었다”며 “말도 안되는 그림을 갖고 와도 아무 소리 못하고 그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동일한 소재가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문신을 소비하는 문화와 계층은 제한적이었고 그 안에서만 돌고 돌았다. 이때까지 주류를 이뤘던 문신의 형태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이레즈미’ 였다.

2003년 몸에 문신을 새겨 현역 입영을 기피한 일당이 검거됐을 당시 모습. 등과 배, 팔다리 등에 새긴 문신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이레즈미' 형식이다.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문신을 하면 처벌받는다.
2003년 몸에 문신을 새겨 현역 입영을 기피한 일당이 검거됐을 당시 모습. 등과 배, 팔다리 등에 새긴 문신은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이레즈미' 형식이다.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문신을 하면 처벌받는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을 통해 국내외 유명인들의 문신이 대중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조폭 문신’ 형식을 벗어난 다양한 장르의 문신이 알려지면서 조금씩 대중의 관심을 얻었다. 원시 부족의 문양 트라이벌, 검정색 잉크만 사용한 블랙앤그레이, 화려하고 선명한 색상이 특징인 올드앤뉴스쿨, 멕시코에서 시작된 치카노 등 다양한 장르의 문신이 알려졌다. 문신을 새긴 스포츠 스타, 연예인이 늘어났고 이를 과감하게 노출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용어 또한 ‘문신’에서 ‘타투’라는 말로 대체되며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 던졌다. 타투로 변신한 문신은 더 이상 어둠의 세계를 상징하는 장식물이 아니다.

올드스쿨 형식의 타투로 유명한 홍대의 한 타투샵.
올드스쿨 형식의 타투로 유명한 홍대의 한 타투샵.
올드스쿨 형식의 타투로 유명한 홍대의 한 타투샵.
올드스쿨 형식의 타투로 유명한 홍대의 한 타투샵.
올드스쿨 형식의 타투로 유명한 홍대의 한 타투샵에 잉크. 올드스쿨 화려한 색상이 특징이다.
올드스쿨 형식의 타투로 유명한 홍대의 한 타투샵에 잉크. 올드스쿨 화려한 색상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기존 전통적 장르에서 벗어나 ‘독창적 예술활동’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미술 전공자들이 타투 시술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예술가’적인 작업을 지향한다. 스스로 ‘타투이스트’라고 칭한다. SNS를 통해 자신 만의 스타일과 방식을 알린다. 스타일이 맘에 들어 찾아오는 고객이 그들의 작품세계를 펼칠 수 있는 대상이다. 다른 작품을 그대로 베끼지 않는다. 그들에게 작품은 오로지 ‘하나’이기 때문이다. 직접 도안을 디자인하고 시술한다. 시술 면적, 크기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지고 피부 밝기에 맞춰 채색작업도 달라진다. 타투에 자기만의 색깔을 넣는다. 다양한 소재도 등장한다. 그야말로 예술 활동이다.

타투이스트 D의 작품
타투이스트 D의 작품
타투이스트 D의 작품
타투이스트 D의 작품
타투이스트 D 의 작품
타투이스트 D 의 작품
타투이스트 B 의 작품
타투이스트 B 의 작품
타투이스트 R의 작품
타투이스트 R의 작품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타투이스트 D씨는 “디자인의 조건 중 하나가 소통하는 것이다”며 “그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밝은 수채화 느낌이 난다. 가볍고 부드럽고 밝다.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의 ‘형님 문신’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소녀 감성’이다. 주눅들어 피하는 것이 아닌, 다가가고 싶은 그림이다. 여성이 주로 찾는 그의 작업실 스케줄은 10월까지 꽉 차있다.

양지를 지향하는 그의 작업은 합법이 아니다. 문신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법은 없지만 의사면허를 가진 이만 문신을 시술할 수 있다는 판례가 있다. 의사협회는 시술 중 발생할 수 있는 세균 감염, 알러지 반응 등의 이유로 합법화를 반대하고 있다. 현재 5,000명이 넘는 타투이스트들은 법과 현실이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홍대 인근에서 수년째 타투샵을 운영 중인 타투이스트 썬랫(Sunrat)은 “이름을 걸고 샵을 운영하는데, 감염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면 이 분야에선 끝이다” 며 “병원보다 더 깨끗하게 위생관리를 하고있다”고 자신했다.

타투에 사용하는 바늘. 바늘이 표피층을 뚫고 간 바늘이 진피층에 잉크를 묻힌다. 판례에선 피부조직에 바늘을 사용하는 것을 의료행위로 규정했다.
타투에 사용하는 바늘. 바늘이 표피층을 뚫고 간 바늘이 진피층에 잉크를 묻힌다. 판례에선 피부조직에 바늘을 사용하는 것을 의료행위로 규정했다.

한국타투협회 관계자는 “자격기준을 법으로 규정하고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타투 인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법의 테두리 밖에 있으면 전문 기술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시술에 뛰어들어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타투이스트는 “아직까지 타투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타투 작업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 한번 새기면 쉽게 못지워 시술, 신중하게 결정해야

피부 깊숙한 진피층에 상처를 내고 색소를 입히는 타투는 한번 새기고 나면 쉽게 지울 수 없는 만큼 시술에 앞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피부과 전문의 김산 원장(청담웰스피부과)은 “레이저는 검정 혹은 푸른 계통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빨강 노랑 등의 색소는 제거되지 않고 남는다”고 말했다. 5~7년이 지나면 옅어지는 반영구 문신이나 눈썹 문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검정이나 푸른 계통이라도 색소가 스며든 피부 층의 깊이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한번에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3개월 간격으로 몇 년에 걸쳐 제거시술을 받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흉터가 남는다. 김원장은 “5년 후 혹은 10년 후에도 타투를 새길 때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신중히 고민하길 바란다”라고 충고했다. 식물성염료를 사용하는 헤나 문신 역시 심각한 피부 알러지 반응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작품사진 제공 = 타투이스트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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