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상원 기자

등록 : 2018.04.12 20:00
수정 : 2018.04.13 00:32

“김기식 출장 적법성 따져달라” 선관위에 거취 판단 떠넘긴 靑

金 사퇴 압박에 역공 나서

등록 : 2018.04.12 20:00
수정 : 2018.04.13 00:32

선관위에 기부 등 쟁점 적법성 질의

일부 피감기관 의원 출장 건수 공개

한국당, 미국 연수비 의혹 등 공세 강화

진상 규명 위한 국정조사도 추진

외유성 해외출장 의혹을 받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사 대표이사 간담회'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연합뉴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외유성 해외출장 논란으로 자진사퇴 압박이 거세지자 청와대가 12일 논란의 적법성 판단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또 일부 피감기관을 무작위로 선정해 다른 국회의원들의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건수를 공개했다. 야권의 정치공세가 도를 넘고 있다는 판단에서 역공을 편 것으로 보이나,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고위 공직자 사퇴 여부를 선관위에 묻는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해외출장 사례 공개에 대해 “청와대의 입법부 사찰”이라며 강도 높게 반발해 정국이 악화일로로 치달을 조짐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오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로 중앙선관위에 질의 사항을 보냈다”며 “김 원장을 둘러싼 몇 가지 법률적 쟁점에 대한 선관위의 공식적인 판단을 받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선관위에 보낸 질의 내용은 ▦국회의원이 임기 말에 후원금으로 기부하거나 보좌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주는 게 적법한지 ▦피감기관의 비용 부담으로 해외출장을 가는 게 적법한지 ▦보좌직원 또는 인턴과 함께 해외출장을 가는 게 적법한지 ▦해외출장 중 관광하는 경우가 적법한지 등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원장의 거취가 선관위 판단에) 절대적으로 기속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물론 공직자의 자격을 따질 때 법률 잣대로만 들이댈 수는 없고 도덕적 기준도 적용돼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김 원장이 티끌 하나 묻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다”라고 인정했다. 이어 “그렇더라도 김 원장의 해외출장이 일반 국회의원과 비교해 평균 이하의 도덕성을 보였는지 엄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역공을 시도했다.

특히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간 19ㆍ20대 국회의원 규모를 더불어민주당이 조사한 결과라며 공개하기도 했다. 김 대변인은 먼저 “피감기관이라면 수천 개도 더 되지만 그 가운데 무작위로 16곳을 뽑아 자료를 봤다”며 “피감기관 지원을 받아 의원들이 해외출장을 간 경우가 모두 167차례였고 민주당 의원이 65차례, 자유한국당이 94차례였다”고 했다. 그는 또 “김 원장과 흡사한 방식의 (의원 개별) 해외출장이 보훈처 4번, 한국가스공사ㆍ동북아역사재단ㆍ공항공사가 각각 2번 등으로 이 또한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천 곳에 이르는 피감기관 중 고작 16곳만 살펴본 경우인데, 전체 피감기관을 들여다보면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고 싸잡아 비판했다.

청와대의 이날 발표는 김 원장의 사퇴불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고, 도덕적으로도 결격 사유가 없다면 해임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여기엔 정권의 재벌개혁 정책을 흔들려는 보수ㆍ금융 세력의 반발로부터 김 원장을 지켜야 한다는 여권의 위기의식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은 즉각 “청와대의 권력 남용을 통한 입법부 파괴 공작과 사찰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반발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청와대는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공직자 외에는 누구도 감찰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국회의원의 해외출장 사례를 전수조사했다는 것은 독재로 가기 위해 대한민국 입법부 전체를 재갈 물리려는 추악한 음모이자 야당 말살 행위”라고 주장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2008~2009년 김 원장이 미 스탠포드대 방문연구원을 지낼 당시 유학 비용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김 원장 연수 시절 스탠포드대 아시아퍼시픽리서치센터 고액기부자 명단에 삼성전자, 팬택, 동양그룹 등 국내 대기업들 일부가 포함됐단 점에서 김 원장이 이들 기업으로부터 후원 받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국내 대기업들로부터 일체의 지원을 받은 바 없다”고 부인했다.

김 원내대표는 또 김 원장이 의원 임기 말 위법 가능성을 알면서도 자신의 정치후원금으로 ‘더좋은미래’를 후원했다는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다. 김 원내대표 측에 따르면 김 원장은 2016년 3월 25일 선관위에 더좋은미래에 후원할 때 제한이 있는지 질의했다. 이에 선관위는 종전의 범위 내에서 정치자금으로 회비를 납부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범위를 벗어나 특별회비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은 공직선거법 제113조 위반이라고 회신했다. 김 원내대표는 “선관위에 질의해서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듣고 후원했다는 김 원장의 해명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날을 세웠다.

한국당은 또 소속 의원 116명 명의로 김 원장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요구할 예정이다. 정의당도 이날 사퇴 공세에 가세했다.

그러나 김 원장은 이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와 관련한 금융위원회 임시회의에 예정대로 참석하는 등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13일엔 자산운용사 사장단과의 첫 간담회도 예정돼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안팎에서 사퇴 압박을 받고 있지만 일단 모든 일정을 계획대로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지용ㆍ이서희ㆍ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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