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벽에 부딪힌 OLPC, 美 보급분조차 80%는 사용 안해
당장 기아·질병 시달리는 곳엔 교육보다 식수·보건시설이 우선
공동체·기술자·교육자 함께 소통·설계하는 프로젝트 돼야
구글이 추진중인 ‘룬’은 인터넷 중개기를 장착한 풍선을 대량으로 띄워서 세계의 저개발 지역에 인터넷을 보급하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향후 상업적 가능성을 계산에 넣었을 개연성도 높지만, 일단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인터넷을 보급해 저개발 지역민들이 정보화의 혜택을 받도록 한다는 실리콘밸리식 박애정신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실리콘밸리 출신 갑부이자 자선단체 게이츠재단 대표인 빌 게이츠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말라리아로 죽어가며 하늘을 쳐다보니 구글이 띄운 풍선이 보일 때, 그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린애가 설사병에 걸렸을 때 아픔을 덜어줄 수 있는 웹사이트는 없습니다.”
용두사미가 된 OLPC
미디어 기술을 보급하는 것이 저개발 지역에서 삶의 질을 높여주고 결국 긍정적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발상은, 기술의 발전으로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적 지향점 덕분에 많은 호응을 얻어왔다. 사람들에게 인터넷으로 정보와 연결을 제공하고, 문자 해독 능력을 키워주고, 교육 수준을 높이면 결국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이상적 시나리오다. 그러나 디지털 도구 활용의 격차, 즉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를 줄이면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이런 신념은 현실에서는 종종 한계에 부딪히는데, 그런 지점에 대한 가장 뚜렷한 교훈을 남겨준 사례가 바로 2005년에 큰 주목을 받으며 출범했지만 현재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노트북 컴퓨터 한 대씩’(OLPC) 사업이다.
OLPC 사업은 저개발 지역의 아이들에게 인터넷에 연결되는 저렴하고 튼튼한 노트북 컴퓨터를 널리 보급해, 효과적으로 배움을 얻고 정보 활용에 능란해지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것은 ‘디지털이다’라는 책에서 디지털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주장을 펼치며 유명해진 니콜라스 네그로폰티였는데, 그는 많은 개발도상국 학생들이 정보를 얻고 무언가를 배우며 만들어 볼 수 있는 도구가 부족하다는 것이 경제발전이 지체되는 핵심 원인이라고 여겼다. 아이들이 지금 그런 도구가 없어서 그렇지, 적절한 성능의 장비를 쥐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긍정적 호응을 얻어 유엔개발계획(UNDP)의 지원을 받게 된 것은 물론이고, 기술문화 저명 필자인 제임스 서로위키로부터 “비영리 단체, 민간업체, 공공 영역이 함께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박애주의 체계의 모델”이라는 평가를 듣기까지 했다.
기술적 측면에서, OLPC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100달러라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저렴한 단가를 목표로 했고, 웬만한 거친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튼튼한 설계, 부품의 손쉬운 해체와 수리, 수동 발전 등이 개발 항목에 포함되었다. 이런 부분은 저개발 지역 지원사업에서 흔히 등장하는 “적정기술”이라는 개념과도 연결되곤 했다. 원래 적정기술이란 어떤 기술을 저개발 상태인 현지의 인프라 수준 안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 보급한다는 의미로, 지금은 가난한 자들의 기술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극복하기 위해 방향을 수정하여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계승되는 중이다. OLPC는 기술적으로 최고 사양은 아니지만 열악한 조건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낮은 가격과 튼튼함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일종의 적정기술 미디어기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업의 실제 경과는 원활하지 못했다. 우선 계획된 보급 시한까지 이뤄낸 기술로는 단가를 190달러 수준에서 더 이상 낮추지 못했고, 그에 따라서 대량 구매를 협의했던 단체와 국가들이 난색을 표했다. 그 결과 다양한 저개발국가에 2008년 말까지 1억5,000만대를 보급하겠다던 야심 찬 계획은, 2009년에 수십만대, 2011년까지 240만대 수준에 도달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더 큰 난관은 보급된 지역에서조차 의도했던 효과를 얻어낼 만큼 열심히 활용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첫 해에 보급됐던 지역이며 사회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이라는 선진국에 속한 알라배마주 버밍엄에서조차, 기기가 지급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80% 가량이 사실상 기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보다 시급한 문제들
열의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고, 국제적 지명도 또한 높은 편이었으며, 기술적 고려 또한 세심했음에도 불구하고, OLPC 사업은 두 가지 큰 문제를 노출했던 것으로 판명됐다. 첫째는 우선순위의 문제다. 미디어 기술 보급이 만들어내는 효용은 일차적으로 정보의 보급과 교육인데, 이런 것은 해당 사회에서 사람들의 생존성이 상당부분 보장된 이후에야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즉 당장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지 않고, 생산 현장이나 분쟁지역에 끌려나갈 가능성이 낮은 환경이 되어야 비로소 정보에 기반한 더 나은 생활기술이나 자기계발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한정된 재원 안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한다면, 많은 저개발 지역에서는 식수와 보건시설이 명백한 우선순위다. 교육을 향상시키고자 한다면, 노트북 보급 이전에 우선 학교부터 더 세우는 것이 먼저다. 게다가 대당 190달러라는 단가는 선진국의 노트북 시장 기준으로는 저렴하다고 해도, 저개발국가가 정확한 효용 검증도 없이 선뜻 투자하기에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사회적 과정에 대한 과소평가였다. 전기와 통신설비 같은 물리적 기간망의 미진함과 불안정성에 대해서는 기기 개발 과정에서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사회라는 무형의 기간망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 결과 사업 초기부터 맥락을 놓쳤고, 이후로도 좀처럼 운영의 묘를 찾지 못했다. OLPC가 지속적이며 발전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기기만 있으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고 능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지지하는 안정된 통치세력 ▦훈련된 교육자 ▦고장을 해결하는 기술자 ▦교육을 장려하는 분위기 ▦습득한 정보와 교육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기회의 존재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많은 지역에서 불안정한 정치 상황, 교육자들의 사업에 대한 회의, 기술 인력의 미비, 사회적 동기부여 부족, 활용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한 사회적 유연성 부족 등이 중첩돼 있다. 애초에 빈곤 지역의 아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단지 미디어 장비 부족 이전에, 정치 사회적 문제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정보기기를 손에 쥐면 아이들이 무언가를 해내고야 말 것이라는 발상은 그야말로 순진한 꿈에 머물고 말았다.
교육뿐 아니라 공동체에 도움이 될 미디어
OLPC 사업은 아쉽게도 현재는 잠잠한 상태지만, 미디어기술로 저개발사회를 발전시키려는 다른 프로젝트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우선순위라는 요소에 관해 목표로 하는 지역사회의 가장 다급한 분야에 대한 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디어기술의 보급은, 아이들 교육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미디어의 활용이 해당 공동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경험을 키워낼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공략해야 한다. 케냐에서 2007년 대선 이후 극심했던 정치폭력 현장 목격 사례를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제보로 취합하여 실시간 지도로 엮어낸 우샤히디 사이트는, 그 어떤 다른 대단한 기술 보급 시도보다 선명하게 정보 활용의 힘을 그 곳 시민들에게 각인시켰다.
사회적 과정이라는 문제는 한층 공략하기 복잡한데, 그래도 가장 기초적으로 시작할 부분은 바로 해당 사회 공동체에서 어떤 종류의 미디어기술과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 구체적으로 조사해 그 맥락에 맞춤형으로 활용하도록 돕는 것이다. 표준화된 학력평가에서 성취도를 올리는 것이 필요한 지역이라면, 그에 맞는 것을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 말라리아 예방법 같은 보건 지식의 보급이 더 필요한 곳에는, 그런 것 위주로 기기 활용 교육을 설계해야 한다. 도구를 던져주고 방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기술자, 교육자들이 함께 소통하며 설계하는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교훈은 세계적 차원의 사업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이나 그보다 좁은 차원에서도 돌아볼 구석이 많다. 기기의 보급만으로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사회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를 개선하는 종합적 과제 안에서 기기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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