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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3월 28일] 경박한 통일논의를 경계한다

입력
2014.03.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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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네덜란드와 독일 순방의 방점을 '통일'에 찍은 듯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자체는 딱히 성과를 논하기 어렵고, 한중 정상회담이나 한미일 3국 정상회담도 외교 의례에 그쳤다. 독일 방문 또한 실질 성과보다 상징성에 치중했지만,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에 비추어 다른 어떤 나라와의 정상 외교로도 얻을 수 없는 고도의 상징성은 확보한 셈이다. 분단 독일의 운명을 좌우했던 주변국의 양해를 끌어낸 외교력, 구 동독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정치지도력, '통일 비용'을 치르고도 리먼 쇼크 이후 세계경제의 불안 속에서 안정적 성장을 이뤄낸 특유의 경제기초체력 등 독일의 값진 자산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따라서 귀국 후 박 대통령은 자신의 대박론을 강화, 통일 논의에 더 많은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분단국 대통령이 통일 문제에 매달리는 게 허물일 수는 없다. 박 대통령처럼 통일의 다양한 측면 가운데 국민경제의 시장규모 확대에 눈길을 두고, 통일비용을 일종의 투자로 여겨 높은 투자효과에 주목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박수를 칠 일이다. 한편으로 현재 정부가 상정한 통일방식에는 찬성하지 않더라도, 남북한의 통합을 겨레의 숙명으로 여기는 사람들 또한 마땅히 반대할 명분이 없다. 오른쪽의 민족주의자와 왼쪽의 '우리끼리 주의자'의 유일한 교집합이 통일 희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장통합ㆍ확대 효과는 수많은 갈래로 제기된 통일 후 예상 결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통일시장은 법체계나 기존 상(商) 관행의 수정 여부 등 다른 결과에 종속되어 그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통일문제를 투자ㆍ산출의 관계로 단순화해 살피려는 생각은 정치적 쓰임새라면 몰라도 진지하게 통일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국가 지도자의 자세와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 큰 문제는 대박론을 계기로 부쩍 활발해진 통일논의가 한결같이 '불현듯 다가올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라는 역사경험에 기댄 막연한 기대이기도 하지만, 권력승계 과정의 위기를 여러 차례 넘긴 북한 지배층과 달리 다수 북한 주민의 체제 불만과 생활의 곤궁이 머지않아 한계에 이를 것이란 관측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쌓이고 쌓인 불만이 폭발할 경우 휴전선은 순식간에 허물어질 것이란 장밋빛 전망의 근거는 아직 제시된 바 없다. 북한 주민이 어디까지 체제 불만이나 경제적 핍박을 견딜 것이냐는 '내인성(耐忍性) 검사'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폭발적 정치변화가 일어날 경우 북중ㆍ북러 국경 대신 휴전선이 허물어질 것이라는 자신감의 근거도 불확실하다.

최근 탈북자들을 보며 문득 60여년의 분단 역사는 이미 남북의 집단인식은 물론이고 유전형질까지 갈랐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3세대가 가깝도록 피를 섞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 마당에 북한의 변화가 저절로 남북통일로 이어지리라는 낙관은 너무 지나치다. 일본 열도가 한류에 젖었지만, '혐한(嫌韓)'성향은 되레 강화되고 있다. 하물며 남의 체제나 지도자가 북의 주민에 강한 매력을 풍겼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무엇보다 현재 범람하는 통일논의는 북 지배층의 대남 경계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섣부르다. 북한 체제를 대내외적으로 지탱해 온 위협적 군사력과 적화(赤化) 의지를 감안하면 위험하기까지 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가 지도자의 헌법적 책무를 잊어서는 안 된다. 통일논의가 주판알을 튕기는 듯한 경박함에서 벗어나 한결 신중하고 내밀해 져야 할 이유다.

진지한 통일논의는 북의 토지 등 재산권에 대한 보호 법제를 검토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어차피 통일 남북은 법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하고, 그게 아니고서는 북은 식민지 침탈 못잖은 남의 수탈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논의에 앞서 그런 우려를 제거하고 남의 매력을 끌어올리려는 조용한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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