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50여개 초중고 무료 분석 국민체력센터 관리 허술 드러나
학부모 "범죄 악용될까 우려" "거북목 등 증상 과장" 지적도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A(40)씨는 4일 학교로부터 ‘바른체형 분석 보고서’라는 4쪽짜리 통지문을 받았다. 재단법인 국민체력센터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자녀의 이름과 성별, 반 정보와 아이의 정면ㆍ옆면ㆍ뒷면 사진, 발바닥 사진으로 체형과 족(足)형을 분석한 결과가 적혀 있었다. 보고서는 A씨 자녀의 어깨가 왼쪽으로 기울었고, 골반이 앞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과전만’ 형태를 보이며 ‘평발’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재)국민체력센터’라는 문구는 믿음을 줬다. A씨는 자녀의 자세가 걱정돼 꼼꼼히 보고서를 살펴보다 통지문에 적힌 인터넷주소(URL)를 입력하고 추가 정보를 찾다가 깜짝 놀랐다.
A씨는 국민체력센터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자녀와 같은 반 아이 12명의 개인정보와 체형 분석 결과뿐 아니라, URL의 끝자리 숫자를 바꿔 다른 반 아이들의 데이터까지 볼 수 있었다. A씨는 “처음에는 우리 아이의 체형이나 자세 등에 대한 문제가 알려져 놀림을 받을까 걱정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이들의 개인정보가 유포돼 유괴 등의 범죄에 악용될까 두렵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본보 확인결과 국민체력센터는 서울시내 50여개 초중고에서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받아 체형을 분석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 중 20여개 학교는 이 센터의 바른 자세 교육 프로그램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용료는 1인당 4만원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초등학교 체육 교사 B씨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때문에 자세가 많이 흐트러진 요즘 학생들이 분석결과를 보고 자세를 스스로 바로잡는 등 효과가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노출된다는 사실에는 학부모나 교사 모두 우려를 표했다. 한 학교 교감 C씨는 “학생들의 개인정보 노출은 민감한 사안이라 학교에서도 조심스러운 문제”라며 “국민체력센터에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보고서 삭제를 요청하는 등 해결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에게 과장된 정보를 전달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에는 “질병진단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며 측정자 인지에 대한 결과”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척추나 목뼈 등을 전문적으로 진단해 분석한 것이 아니라 사진에 찍힌 자세만 분석한 결과라는 뜻이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학부모 D씨는 “대부분 학생들이 치료나 교정을 받아야 하는 심각한 증세가 아닌데도 ‘거북목’‘과전만’ 등 과장된 표현 때문에 상당수 부모들이 필요 이상으로 걱정을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체력센터 관계자는 “청소년들이 바른 자세를 갖도록 해 건강하게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개인정보가 노출된 부분은 기술적으로 해결이 가능한 만큼 최대한 빨리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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