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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에 변호사부터 부르는 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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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에 변호사부터 부르는 부모들

입력
2017.10.27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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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A(16)양은 지난달 “나랑 사귀던 B군이 C양과 만나 성행위를 했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 회부됐다. B군과 C양 부모가 ‘정신적 폭력’을 당했다며 학교에 A양의 징계를 요청했기 때문. 그런데 학폭위 출석 통보를 받은 A양 부모는 학교폭력전문 변호사를 가장 먼저 찾았다. “교사와 학부모가 주축이 된 학폭위의 전문성을 믿지 못하는 데다, 향후 법적 대응에도 유리할 것”이란 나름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학교폭력(학폭)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학교를 배제한 채 곧장 법적 다툼부터 준비하는 현상이 확산되면서 ‘학폭 상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치위원 5~9명이 내리는 학폭위 징계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돼 학생 장래에 적잖은 영향을 주는 데 반해, 자치위원의 법률지식이 충분치 않다는 게 먼저 변호사부터 챙기는 학부모들 입장이다. 학폭 전문으로 소문난 한 변호사의 한 달 평균 상담 건수가 평균 100건 안팎일 정도다. 하지만 최소 수백만원에 달하는 변호사 수임료 마련이 부담스러운 대다수 가정에선 학폭위 단계부터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폐단을 걱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학폭 상업화는 이미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곳곳서 나온다. 26일 인천 소재 고교 교사 정모(50)씨는 “최근 일부 중ㆍ소형 법무법인에선 수도권 내 중ㆍ고교를 돌며 ‘학폭 전문변호사’ 홍보 전단을 뿌리거나, 변호사가 가해학생 쪽 ‘학폭위 컨설팅’을 맡았다며 학폭위 참관을 요구하는 등 징계 절차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려는 시도가 심심찮게 보인다”고 했다. 학교 밖에선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을 받고 법적 다툼 대비용 정보수집을 대신해주는 ‘학교폭력 심부름센터(흥신소)’가 판을 치고, 몇몇 보험사는 교원 대상 ‘소송보험(피소 시 변호사 선임비용 지급)’까지 내놓고 있다. 학폭위에 10년 넘게 참여했다는 경기 고양시 소재 고교 교사 서모(42)씨는 “애들 싸움이 부모 재력 과시로 번지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부모들이 촌지로 학폭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수십 년 전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니냐”고 혀를 내둘렀다.

변호사들은 “학폭위 비전문성과 고무줄 잣대가 변호사 선호 현상을 자초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여성청소년전문 윤성경 변호사는 “같은 사안도 학교마다 각기 다른 처분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다투는 재심, 행정심판, 행정소송이 계속 늘고 있는 추세”라고 꼬집었다. 실제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학폭위 처분에 대한 재심 청구 건수는 1,299건으로, 2012년(572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학교 등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 또한 2012년 50건에서 2015년 109건으로 3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분쟁이 늘다 보니, 학폭 사건엔 눈길도 주지 않던 대형 법무법인들도 사안이 중대하다 판단되면 수임을 마다하진 않는 분위기라고 한 법조인은 전했다.

서울시교육청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로 활동했던 전수민(39) 변호사는 “학폭위에서 내린 모든 징계 처분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현행 규정상 가해학생 부모들 입장에선 자녀 징계를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도 “학폭위 결정 존중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부당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변호사를 찾아도 늦지 않단 얘기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변호사 자격증 소지 학부모, 학교전담경찰관 참여 확대 등 학폭위의 전문성과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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