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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6.12.20 14:44
수정 : 2016.12.20 14:45

[김월회 칼럼] 강화도조약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등록 : 2016.12.20 14:44
수정 : 2016.12.20 14:45

그는 연신 웃음을 짓고 있었다. 파안대소를 참느라 애썼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엔 역부족 같아 보였다.

얼굴은 고소해 죽겠다는 웃음기로 꽉 차 있었다. 지난 16일 원내대표 경선 이후에 있었던 새누리당 이정현 전 대표 얘기다.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소추 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답변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검찰이 증거가 확실하다며 ‘공동정범’으로 명시했음에도,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 3일 후 최순실 씨는 첫 재판에 출석해 검찰이 기소한 혐의내용 일체를 부인했다. 이달 초 국회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나온 삼성전자 부회장은 제기된 합리적 의심에 대하여 모르쇠로 일관하였다.

역시 지난 16일에 있었던 일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한미연합사를 방문해 한미동맹을 강조하였다. 그러곤 이틀 후 한반도 사드 배치를 흔들림 없이 이행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박근혜의 사람’ 답게 그는 우리나라의 국익에, 더 넓게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큰 해가 된다는 각계각층의 우려를 무시했다. 같은 태도로 그는 한일 위안부 협정에도 변화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선 지난달 23일, 직전 토요일에 전국적으로 100만이 넘는 시민이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즉각 퇴진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강행하였다.

이 모든 게 뭐가 문제냐는 국민이 분명히 적지 않으리라. 그래서 문제는 사뭇 심각하다. 그들 가운데는 수구적 언론과 정치인, 권력기관, 재벌 같은 우리 사회의 거대 기득권 세력이 들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일제 강점기부터 줄곧 불의와 결탁을 통해 우리 사회 기득권자로 거듭난 이들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방 후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잘 지켜왔다. 아니, 그들이 보기에는 위기였을 4ㆍ19혁명이나 5ㆍ18민주화운동, 6ㆍ10민주대항쟁 등을 도리어 기득권을 더 키우는 계기로 악용하기도 했다.

그러니 시간은 자기편이라고 철석같이 믿게 되는 것이다. ‘촛불혁명’이 그들에겐 그저 지나가는 소나기로 보이는 까닭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내내 그래왔듯이, 종국에는 그들이 다시 군림하는 세상으로 회귀해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대사가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일궈낸 자못 내세울 만한 역사였지만, 안타깝게도 친일 등 불의한 세력의 청산이란 과제만큼은 제대로 수행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지역감정, 종북 프레임, 세대갈등 같은, 지난 70여 년 동안 아주 잘 써먹었던 칼을 여전히 쥐고 있다. ‘박근혜와 그의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행하는 이유다.

그래서 역사를 자기 생활의, 또 국가 일상의 주요 자산이자 기축으로 삼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도대체 역사가 현실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가령 친일이나 독재 부역 같은 불의는 조상들이 한 일일 뿐, 그 책임을 후손이 지는 것이 마땅하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만약 현 대통령처럼 무능하고 부도덕한 이가 ‘흙수저’라면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국민은 필요할 때만 안중에 둘 뿐, 오로지 권력만 좇는 이가 흙수저 출신이라면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등이 될 수 있을까. 재벌 2세, 3세들이 청문회에서 답변한 것처럼 흙수저들도 그렇게 답변하면 과연 그들 기업의 입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며, 재벌 총수도 되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조상이 친일이나 독재 부역의 대가로 만들어낸 ‘금수저’ 덕분이다. 사실이 이러한데 어떻게 역사가 현실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비단 개인 차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140년 전 강화도조약을 맺었을 때, 그것이 국권침탈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 이가 당시 조선에 얼마나 있었을까. 또 당시 일본 위정자 가운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가 얼마나 됐을까.

당시 역사를 보면, 일본은 조선 식민지화를 향한 행보를 착착 취해갔다. 그렇게 생각했던 일본인이 주류였음을 말해준다. 반면에 제국주의적 야욕이 갈수록 구체화했음에도 조선은 잇따른 조약에 날인했다. 그런 생각을 한 이가 조선엔 매우 적었음의 방증이다. 그 결과, 강화도조약 체결 후 30여년 만에 조선은 일본에 강점되었다. 그리고 지금, 일본에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다음 단계로, 유사시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한반도 진군을 가능케 하는 ‘상호군수지원협정’이 거론되고 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그 자체만으로 평가해선 안 되는, 국가 일상이 역사 위에서 꾸려져야 하는 까닭이다.

역사는 악용되라고 고안된 문명의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사악하고 탐욕스런 이들에겐 가차 없는 철퇴일 뿐, 결코 그들이 기대는 언덕일 수 없다. 역사를 악용하여 현재에 행세하고 미래를 장악하려는 이들의 발호를 더는 그냥 두어선 안 되는 연유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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