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보조원으로 입사해 반도체 회로 깊이 알고 싶어 석 달 만에 일본어 자격증
자격 없던 社內 대학 입학 끝내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 학사ㆍ석사까지 쉼 없이 열공
플래시메모리 설계분야 우뚝… 1년 빠르게 임원으로 발탁
"10년 후 자신의 모습 떠올리며 의지 다져라" 학생들에 조언
"아이 둘 낳고 기르는 거 너무 힘들죠. 게다가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까지 해야 하니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주변엔 나보다 훌륭한 '선생님'들이 너무 많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이들의 도움으로 얼마든지 해 낼 수 있습니다."
삼성그룹 창사 이래 첫 여상(女商) 출신 임원인 양향자(47) 삼성전자 상무(디바이스 솔루션 부문 메모리 사업부 연구임원)는 14일 대전 충남대에서 기자와 만나 성공의 공을 도움 준 이들에게 돌렸다. 1,000여 명의 삼성전자 임원 중 연구를 전담하는 여성 연구 임원은 딱 9명. 그 중 반도체 부문에서는 양 상무뿐이다.
지난해 12월 5일. 평균 승진 시기보다 1년 빠른 '깜짝' 승진 발표를 듣고 양 상무는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고 했다.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공교롭게 그 날은 아버지가 저랑 같은 나이(46세)에 저 세상으로 가신 지 딱 30년 되는 날"이었다며 "하늘의 별이 되신 아버지께 딸이 이렇게 성공했다는 말을 해드릴 수 있어 뿌듯했다"고 했다.?
전남 화순의 산골마을에서 네 형제(오빠 둘과 남동생 둘) 사이에서 '교수님'을 꿈꾸는 평범한 산골소녀로 자라던 양 상무는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원서 마감 전날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며 "동생들을 잘 보살펴 달라"는 말을 남겼다. 양 상무는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과 함께 다음날 여상(광주여상)에 입학 원서를 냈다. 그리고 열 아홉에 삼성전자 연구 보조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공부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현미경으로 반도체 회로를 들여다 보며 그대로 종이에 그리는 일을 하면서 "반도체 회로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양 상무는 "반도체 기술은 일본이 앞서 있었고 상당수 자료가 일본어로 돼 있었다"며 "석 달 만에 일본어 자격증을 땄다"고 말했다.
양 상무의 악바리 근성은 이것이 시작이었다. 1990년 삼성전자는 사내 기술대학을 세웠다. 그런데 상고 출신이나 여사원은 입학할 수 없었다. 양 상무는 "담당자를 찾아가 시험 볼 기회만 달라고 매달렸다" 며 "가까스로 입학했지만 결국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했다. 그는 이후 한국디지털대 인문학 학사(2005년), 성균관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2008년) 등 공부를 이어갔다. 지금도 매일 영어 과외 교사와 영어 공부에 열심이다.
그런 양 상무에게도 육아는 넘기 쉽지 않은 벽이었다. 그는 "시어머니도 도와 주셨고 동네 곳곳에 내 편을 만들었다"며 "수원 망포동에 수민이(딸) 엄마, 준성이(아들) 엄마 하면 웬만한 분들은 다 알았다"고 했다. 학기 초면 양 상무는 아이를 데리고 학교 주변 식당, 학원, 서점을 찾아가 '이 아이가 오면 먹을 거나 필요한 책을 주시고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라는 인사를 해 두고, 퇴근길에 들러 계산을 하면서 아이들 상태를 살폈다. 양 상무는 "소풍이나 입학식 졸업식은 못 챙겼지만 운동회 때는 점심 시간 중에 열리는 엄마달리기에 나가서 정장을 입고 맨발로 악착같이 1등을 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날 양 상무는 삼성그룹 청년 토크콘서트인 '열정 락(樂)서' 올해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도서산간 지역 중학생 1,500여 명 앞에서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주제로 자신의 스토리를 풀어냈다.
양 상무는 학생들에게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91년 10월 12일 사원 시절 큰 딸을 낳고 다이어리에 삼성전자 직급을 적으면서 마지막에 임원에 해당하는 'VP(Vice?President)'를 적었다"며 "몇 년 후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아이를 낳았을 때 6개월 잠시 뒤쳐졌던 적을 빼고는 반드시 이뤄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 '내가 알아서 할게'는 귀찮아서 회피하려는 말이 아니다"며 "스스로 결정하고 직접 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대전=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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