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격리 6000명 넘었는데 하루 2, 3번 전화로만 상태 체크
의료진은 찾지도 않고 방기
격리자 관리하는 보건소 직원은 "몰래 외출 땐 통제하기 불가능" 하소연
#메르스 자가격리자
‘○○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응급실에 다녀간 귀하가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위험이 있으니 자택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지난 8일 20대 남성 A씨는 서울 소재 보건소로부터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이틀 전 이마가 찢어져 들렀던 응급실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자가 3시간 전에 다녀가 격리 조치를 당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했지만 더 놀라운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보건소 직원은 하루에 2,3번씩 전화로만 상태를 체크했다. 열과 기침이 나는지, 집에 있는지를 물었다. 집에 체온계가 없어 A씨는 느낌만으로 열이 나는지 스스로 판단해 답했다. 아침, 저녁으로 체온을 확인해 37.5도가 넘으면 보건소에 연락하라는 ‘자가격리 생활수칙 안내문’ 내용은 유명무실했다. 심지어 최근엔 A씨가 다친 이마를 소독하러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자 보건소 직원은 횡설수설하다 “원래 안 되지만 알아서 다녀오라”고 말했다. 의료진을 보내기는커녕 이동경로를 파악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응급실에 동행한 동료는 아예 자가격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는 현재 멀쩡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A씨는 “관리 대상자가 아닌 사람들 가운데 왜 확진자가 나오는지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격리자 관리 보건소 직원
B씨는 서울 한 보건소에서 격리 대상자를 근 한달째 담당하고 있다. 그는 “보건당국은 손이 달리는데다 말을 안 듣는 격리자들의 도덕불감증도 큰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규정상 자가 격리자들은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잠복기가 지날 때까지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이 기간 보건소는 정해진 시간에 격리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증상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장기화로 인해 격리자 관리에만 전념할 수 없는 형편이다. B씨는 “자가 격리자 관리뿐 아니라 민원 상담, 검체 채취 등 메르스 관련 업무가 폭증하고 있다”며 “구청 직원들까지 동원돼 하루 세 번씩 유선으로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B씨도 격리자들이 몰래 외출할 경우 이를 통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끼칠 영향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생업에 대한 우려나 개인적인 사정, 격리생활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B씨는 “업무 피로감보다 자택 격리에 협조하지 않은 사람을 설득하고 감시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호소했다.
17일 현재 격리대상자는 6,508명으로 전날보다 1,368명이 늘었다. 1만명을 돌파하는 것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통제가 어려운 현실에서 격리통보를 무시하고 다중이용 시설을 활보해 ‘공포’를 전염시키는 이들의 시민의식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격리자의 양심과 자발적 신고에 기댄 관리시스템으로는 메르스 확산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지적에 아직은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박동균 국가위기관리학회장은 “지역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1차적 의무”라며 “인력부족을 탓할 게 아니라 멘토를 지정해 격리자들을 관리하게 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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