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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 동거' 젊은 남녀의 속내

입력
2014.07.0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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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톡 2030] 혼전 동거

女 "집에 보내기 싫어하던 그 남자, 어느새 나를 소가 닭 보듯"

男 "결혼할 만큼 사랑하는 게 뭔데… 웨딩마치가 사랑의 최상급?"

아직 우리 사회에서 동거를 내놓고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대학생이나 직장인 가운데 동거커플은 의외로 많습니다. 대체 이들은 왜 쉬쉬하면서까지 동거를 선택한 것일까요. 잠시도 떨어져선 살 수 없을 만큼 사랑해서? 생활비를 줄이려고? 아님 섹스가 좋아서?

실제 동거를 해본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아래는 20~30대 남녀 10명의 사연을 모아 각색한 것입니다.

그 여자의 속내 (24세 여자, 9개월 동거)

“너 미쳤어? 나중에 흠 잡혀”

친구에게 남자친구와 동거 사실을 털어놓은 날, 나는 동거를 결심했던 때보다 더 큰 혼란에 빠졌다. 무조건 반대하는 친구 왈, “집에 자주 오는 거랑 동거는 다르잖아.”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가? 애인이 집에 20시간 있는 건 괜찮고 24시간 있는 건 안 되는 건가? 그러나 친구의 솔직한 고백에 나는 따지려던 걸 참았다. “모순이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나라면 안 할 것 같아.”

나는 친구가 대학 시절 동거할 뻔 했던 사실을 알고 있다. 방학 때 내려가기 싫다며 짐을 싸 들고 온 남자친구를 차마 내쫓지 못했던 친구는 밤새 고민하다가 다음날 결국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그를 내보냈다. 순수한 충고 앞에 나는 말 꺼낸 것을 후회해야 할지, 동거를 후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남자친구를 만난 건 취업을 준비하면서 끊은 영어학원에서였다. 동갑내기인 그는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절제나 밀당의 미학 따윈 몰랐다. 오전엔 영어학원, 오후엔 카페를 전전하며 우리는 한 몸처럼 붙어 다녔고 오래지 않아 저녁엔 모텔이라는 코스가 추가됐다.

둘 다 자취를 하면서도 모텔에서 잠자리를 가졌던 건 나 때문이었다. 왠지 집에서는 그러면 안될 것 같다는 막연한 죄책감이 짓눌렀다. 그러나 학생으로선 큰 돈인 3만~4만원씩 매일 쓰면서, 난 이 돈의 목적이 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를 집에 들인 여자’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서? 그럼 집에만 안 들였지 모텔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건? 집에서 섹스하는 여자에겐 주홍글씨가 찍히고, 모텔에서 섹스하는 여자는 당당하게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는 거야?

고민하던 나는 결국 누군가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남자 친구를 집에 들였다. 한 번 열린 문은 다시 닫히지 않았고 집에는 그의 칫솔과 양말, 로션이 빠르게 늘어갔다. 그가 당연한 듯이 쓰레기를 버린 날 우리의 동거는 기정사실화 됐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밀가루 반죽을 서로의 코에 묻히며 까르륵대다가 침대로 쓰러지는 나날이 이어질 줄 알았지만 실상은 곰팡이와 초파리, 머리카락과의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건 애정이 식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거였다. 동거 전 집에 보내기 싫다며 달뜬 눈길로 날 응시하던 그는 어느새 나를 소 닭 보듯 하고 있었다. ‘이게 미래의 내 결혼생활인가?’ 생각하면 아찔해졌다.

혼란과 불안에 휩싸였던 첫 동거는 1년을 채우기 전 남자친구가 지방 회사에 취직하면서 자연스레 막을 내렸다. 우리는 주말 연인이 됐지만 이미 모든 설렘을 잃어버린 후였다. 다시 예쁜 모습으로 누군가의 달뜬 눈길을 받고 싶었다. 그게 금방 져버릴 꽃잎 같은 것이라 해도, 지금 남자친구와 함께 보고 싶은 건 저 하늘에 뜬 별이지 곰팡이로 덮인 된장국 따위가 아니었다.

그 남자의 속내 (36세 남자, 5년 동거)

“너흰 언제 결혼하냐?”

여자 친구와의 동거 사실을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된 이후 저 말은 마치 인사처럼 나를 따라 다녔다. 그 날은 대학 선배였다. 나를 동생처럼 아낀다는 그는 술 한잔 하자더니 새로 사귄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왔다. 예감이 좋지 않았는데 역시나, 그는 믿음직한 남자 코스프레를 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남자가 사랑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란 말은 그냥 넘겼지만 “걔랑 결혼 안 하면 넌 진짜 나쁜 놈이야.”란 대목에서는 화를 참지 못했다. “왜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건데요?” 가시 돋친 내 말에 옆에 앉은 여자애가 톡 끼어들었다. “동거는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오빠 여친은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남자를 위해서 밥하고 빨래하고 자기 예쁜 시절을 다 보내고 있는 건데. 그 분은 오빠가 결혼할 만큼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걸요?”

결혼할 만큼 사랑하는 게 뭔데? 결혼이 사랑의 최상급이냐? 나는 속으로 말을 꿀꺽 삼켰다.

여자 친구는 회사에서 처음 만났다. 세 살 어린 그녀는 늘씬하고 세련돼 저절로 눈길을 끄는 타입이었다. 연적들을 물리치고 그녀를 쟁취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나답지 않게 행동했는지 아마 여자친구도 모를 거다.

사귄 지 4개월 후 그녀가 이직을 하면서 회사 기숙사를 나오게 됐을 때 나는 내 전셋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그녀가 본가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과 독립하기엔 자금이 쪼들리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의 아빠는 폭력가장이었다. 같이 살자는 내 제안에 그녀는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동거 생활은 대체로 행복했다. 그녀는 내 사소한 짜증을 웃음으로 바꿀 줄 아는 여자였다. 잠자는 곳에 불과하던 집에서 문득문득 온기가 감지될 땐 이 생활이 끝날까 봐, 그녀가 떠날까 봐 나는 진심으로 두려웠다. 자주 몸이 아픈 그녀를 업고 한밤중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간 적도 여러 차례였다. 그때마다 “어떤 관계냐” 묻는 간호사에게 남편이 아닌 “남자 친구”라고 답해야 했을 때 나는 차라리 결혼으로 우리 사이를 공식화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 둘 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싫어했다. 아이를 원하지 않았고 시댁이나 처가 같은 한국 가족문화에도 거부감이 컸다. 그녀는 가장이라는 단어를 혐오한다고 말했고 나도 한 여자의 남자라는 위치로 족했다. 이게 왜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말로 해석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한달 전 그녀는 복직 후 회사에서 만난 남자와 눈이 맞아 내게 이별을 고했다. “오빠가 청혼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그녀는 헤어지면서 거듭 강조했지만 나는 결혼 반지로 우리 관계를 묶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 거란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관습과 제도의 위력을 부인한 대가로 나는 거의 매일 밤을 잠들지 못하고 있다.

※ '까톡'은 까놓고 토크(이야기)한다는 의미로 2030 젊은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고민을 솔직담백하게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매주 1회,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취재

황수현기자 sooh@hk.co.kr

이서희기자 shlee@hk.co.kr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남태웅기자 huntingm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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