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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박사모의 성조기

입력
2017.01.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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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이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확정할 즈음, 대회장 밖에서는 트럼프 반대 시위가 이어졌다. 흑인과 중남미 이민자가 포함된 시위대 중 일부는 트럼프가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성차별주의자라며 미국 국기 성조기를 불태우는 과격 시위를 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당선된 뒤 반 트럼프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됐을 때도 시위 현장에서 불탄 성조기가 발견됐다. 그러자 트럼프는 성조기를 태우는 사람은 감옥에 보내거나 시민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해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을 불렀다.

▦ 제 나라에서 수모를 당했던 성조기가 한국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 2016년 12월 31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10차 촛불시위가 열린 날, 박사모 등 자칭 보수들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박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개최하면서 성조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수십 명이 동시에 잡아야 할 정도로 거대한 성조기여서, 참가자들이 쥐고 있던 작은 태극기들을 순식간에 압도했다. 최근 수년 동안 보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 2000년 대 초반만 해도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보수 집회에는 성조기가 빠지지 않았다.

▦ 당시 보수 세력들은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계속 맡아달라고 애원하며 성조기를 흔들었고 한국군을 이라크에 파병해야 한다며 또 흔들었다. 여중생들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도 성조기를 휘날렸고 세계를 갈등으로 몰고 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축복을 기원하면서 성조기를 흔들었다. 심지어 삼일절과 광복절에도 성조기를 흔들고 미국 국가를 연주해 제 나라 독립 운동과 자주권 회복의 영광을 미국에 바치겠다는 뜻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 미국의 정치학자 데니스 하트는 “사대주의의 표현이자 미국에 대한 짝사랑”이라며 “민망하다”고 한 적이 있다. 하트 교수 말고도 성조기 흔드는 한국 보수 때문에 당황스럽다는 미국인이 적지 않다. 탄핵 반대 집회에 성조기를 들고 나온 것이 한국 내부 문제에 미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반면 촛불집회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훌륭한 시위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보수 세력이 자신의 뜻을 알리고 싶다면 성조기 동원 말고 품격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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