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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처럼 영화처럼...어릴 적 보던 동화책과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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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처럼 영화처럼...어릴 적 보던 동화책과는 다른

입력
2014.09.1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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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의 보은’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ㆍ그림

“마법 빗자루가 천년만년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첫 문장을 읽고 새삼 ‘아, 그렇겠네’ 했다. 사실적이지만 범상치 않아 보이는 빗자루가 그려진 겉표지와, 도끼를 높이 쳐든 빗자루가 그려진 속표지를 본 다음이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_글이 주인공이고 삽화가 양념이던_동화책과는 달랐다. 동화책에서 저 첫 문장을 보았다면 ‘마녀와 빗자루가 나오는 이야기이겠구나’ 하고 예사롭게 생각했을 텐데, 이 책은 ‘뭔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겠는데’라는 느낌을 준다.

이례적으로 예고 없이 힘을 잃고 마녀를 태운 채 곤두박질친 마법 빗자루가 주인공이다. 땅으로 패대기 쳐진 마녀는 인정 많은 과수댁의 도움으로 몸을 회복하고 빗자루를 남겨둔 채 떠난다. 평범한 빗자루처럼 생긴 마법 빗자루는 스스로 온갖 집안일을 하고 심지어 피아노까지 치며 과수댁과 오순도순 산다. 이웃집 스피베이 씨는 이 빗자루가 요물이라며 가만 두면 큰일 난다고 마을 사람들을 선동하고 다닌다. 결국 빗자루는 스피베이 씨의 등쌀에 ‘화형’ 당하고 마을 사람들은 밤마다 새하얀 빗자루 귀신을 보게 된다. 도끼를 든 빗자루 귀신이 무서워진 스피베이 씨는 이사를 간다. 결말의 반전이 압권인데, 저자 알스버그는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과수댁이 마련해준 하얀 페인트 외투’ ‘사내들이 연행해 가서 불에 태울 때까지 잠에 취해 있었던 빗자루’ 등으로 과수댁과 빗자루의 통쾌한 복수를 암시한다.

이야기만 떼놓고 보면 단순하다. 그러나 깔끔한 글과 세밀하면서도 초현실적인 그림이 화학적으로 결합해, 이 단순한 이야기가 품은 풍부한 맛을 최상으로 음미할 수 있게 해준다. 마법 빗자루는 아무 잘못도 안 했지만 스피베이 씨에겐 보통 빗자루와 다르다는 것, 그 존재 자체가 죄였다.

마녀사냥으로 대표되는, 인간사에서 되풀이돼온 타자에 대한 폭력은 아직도 도처에 널려있다. 이런 살벌한 세상에서 약자들의 연대로 귀결되는 해피엔딩은 순진하지만 버릴 수 없는 로망이다.

알스버그의 양감이 풍부하고 원근법이 정확한 단색화는 허풍처럼 보일 수 있는 이야기에 사실감을 부여한다. 그림이 독자에게 말을 한다. 빗자루가 닭 모이를 주고 장작을 패는 장면을 볼 때 ‘이건 당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주문을 건다. 은근한 암시로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글처럼, 그림에도 시치미 뚝 떼는 세련미가 있다. 특히 마녀가 공중에서 추락하는 장면은 영화의 스틸컷이나 초현실주의 회화 같다. 그로테스크해 보이기도 하는 알스버그의 그림책이 어린이들에게 환영받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는 미국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이다. 영화 ‘주만지’와 ‘폴라 익스프레스’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빗자루의 보은’을 통해 그림책이 어릴 적 보던 동화책과는 다른, 독자적인 장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림책이란 언어 예술과 회화 예술의 조화물을,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물리적 형태로 형상화해낸 것이다. 뛰어난 그림책은, 그림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 내는 독자적인 예술이다. 그림책의 즐거움을 아는 어른은 다른 사람보다 즐거운 세계를 하나 더 가진 사람이다.” 일본의 어린이책 전문가 마쓰이 다다시의 말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작품이다.

김소연기자 au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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