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 살고 있는 장모(57)씨는 직장에 다니는 딸이 지난해 7월 손자를 출산하자 육아 도우미로 나섰다.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딸의 고민을 듣고서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요일 저녁이면 경기 화성 봉담동에 있는 딸집에 갔다가 금요일 오후 퇴근하는 생활은 쉽지 않았다. 딸이 집을 나서는 오전 7시부터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손자 옷을 빨고 하다 보면 어느새 딸이 돌아오는 오후 7시가 훌쩍 넘는다. 이렇게 장씨는 하루 12시간씩, 1주일에 60시간 가까이 육아 활동을 하고 있다. 딸 내외가 고마움의 표시로 주는 월 100만원은 하는 일에 비하면 많은 돈이 아니다. 장씨는 “첫 손주라 애정이 남달라 조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보건소 육아교실까지 다녔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맞벌이 가정의 증가로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돌보는 ‘황혼 육아’가 늘고 있는 가운데, 조부모들은 법정 근로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면서도 최저 시급보다 적은 보상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육아정책연구소의 ‘조부모 영유아 손자녀 양육실태와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전국에 있는 황혼 육아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주당 평균 양육시간은 42.53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인 40시간을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2명(22%)은 50시간 넘게 손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노동시간에 비해 받는 양육비는 턱 없이 적었다. 일정금액의 양육비를 정기적으로 받는 이들은 절반(49.8%)에 그쳤다. 평균 양육비는 57만원으로 시급으로 따지면 3,350원 수준이어서 지난해 최저 시급(5,580원)보다도 낮았다. 양육비는 31만~50만원이 37.8%로 가장 많았고, 51만~100만원(35.7%), 30만원 이하(22.9%), 100만원 이상(3.6%) 순이었다. 응답자의 27.8%는 비정기적으로 양육비를 받고 있으며, 아예 양육비를 받지 않는 경우도 22.4%나 됐다. 부모들은 조부모에게 자녀를 맡기는 가장 큰 이유로 ‘남에게 맡기는 것이 불안해서’(32.3%)를 꼽았다.
전효정 중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발적인 양육이라면 남에게 맡기는 것보다 좋겠지만 비자발적인 경우가 많고, 이는 조부모들이 남은 삶을 설계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며 “보육기관에서 질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해 부모들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이 맞벌이 가정의 일ㆍ가정 양립을 돕고 있는 만큼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이윤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호주에서는 손자녀 양육을 맡은 조부모에게 수당을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도 3세대 동거 지원책을 발표하는 등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지원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부모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차원에서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에게 양육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kn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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