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소영 기자

등록 : 2017.08.02 17:19
수정 : 2017.08.03 20:53

왁싱샵 살인사건, “여혐 콘텐츠가 여성 살해 불렀다”

[사소한소다] <45> 온라인 콘텐츠 창작자와 수용자의 젠더감수성

등록 : 2017.08.02 17:19
수정 : 2017.08.03 20:53

최근 서울 강남에서 1인 왁싱샵을 운영하는 여성이 손님으로 온 남성에게 흉기로 목을 찔려 살해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이 사건이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범죄 대상을 선택한 경위 때문이었다. 용의자는 지난 봄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의 남성 BJ A씨가 진행한 해당 왁싱샵 방문 영상을 보고 이 여성이 혼자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범행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는 손님으로 위장해 가게를 방문해, 왁싱을 받다 강간을 시도하고, 흉기로 목을 찔러 살해한 후 여성의 체크카드를 훔쳐 달아났다.

이번 사건에 대해 온라인에서는 여성혐오 콘텐츠가 여성 살인을 불렀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는 6일 낮 12시부터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여혐살인 공론화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시위 주최 측은 인터넷 BJ A씨가 영상에서 피해자가 혼자 일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성적 흥분을 강조하는 등 성적 의도를 담아 영상을 편집했다고 비판했다.

여혐살인 공론화 시위 홍보물. 여혐살인 공론화 시위 카페

지난달 31일 A씨는 자신의 아프리카TV 방송에서 “해당 왁싱샵에 먼저 촬영 허가를 받았고, 가게를 홍보해 주기로 한 조건으로 촬영한 것”이라며 “영상을 보고 범죄를 저지르라고 한 일이 아니었다”고 밝혔지만 온라인에서는 “아무리 악의가 없어도 BJ가 왁서(왁싱샵에서 털을 제모해주는 사람)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시각으로 방송을 진행한 것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 “왁서의 외모, 발기하는 성기에 의미를 둔 것은 방송을 한 사람과 보는 사람들 아닌가”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강남역 살인 사건보다 때보다 더 심각한 여성혐오 살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여성을 ‘남성에게 서비스해 주는 존재’로 여겨지는 직업들이 여럿 있는데, 여기에는 직업적 영역을 넘어 성적 기대가 포함돼 있다”며 “여성 왁서, 포괄적으로는 여성 마사지사 등에 대해서 남성의 성적 욕망이 덧입혀진 상태에서 콘텐츠로 만들어지고,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식이 있는 사람이 이 콘텐츠를 보고 해당 여성을 살해했기 때문에 여성혐오 살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콘텐츠들은 계속 양산돼 왔다. 이번에 부각된 브라질리언 왁싱에 대한 콘텐츠도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최근 브라질리언 왁싱이 화제가 되면서 아프리카TV나 유튜브에서 진행자가 직접 브라질리언 왁싱을 체험해 보거나 체험기를 다루는 영상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남성 진행자들이 다룬 브라질리언 왁싱 체험기를 보면 여성 왁서에게 왁싱을 받고, 성적으로 흥분된다는 내용의 자극적인 제목과 미리보기 화면으로 눈길을 끄는 경우가 많다.

왁싱샵 주인을 살해한 남성이 본 것으로 추정되는 인터넷 방송 BJ의 영상 썸네일.

이번 사건에서 용의자가 시청했다고 알려진 A씨의 유튜브 영상 제목은 각각 ‘망했다... 브라질리언 왁싱사가 너무 이쁘다ㅠ 풀버전 1부[10만 구독 공약 영상]’ ‘브라질리언 왁싱 첫 경험 중 미모의 여자 왁서 앞에서 서..섰다....! 개민망ㄷㄷ 풀버전 2부’였다.

온라인에 게시된 다른 남성 진행자들의 브라질리언 왁싱 체험 방송의 제목도 ‘브라질리언 왁싱 중 그 아이가 화났다’, ’ ‘미모의 여직원에게 브라질리언 왁싱받다가 xx에 피 나와서 못 참고 기절 응급실각!!!!’ 등으로, 노골적으로 여성 왁서를 성적대상화하는 여성혐오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온라인 콘텐츠들과 이를 무비판적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수용자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일반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들이 대표적이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길거리에서 만난 미모의 일반인 여성을 BJ가 쫓아다니면서 인터뷰하는 방송들은 페미니즘 측면뿐 아니라 사생활 침해라는 점에서도 문제”라며 “인터넷방송 실시간 채팅창을 보면 여성이 등장하기만 하면 반사적으로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콘텐츠가 하나의 플랫폼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플랫폼에서 소비되는 인터넷의 특성도 문제적 콘텐츠를 걸러내는 데 어려움을 준다. 이번 사건과 연관된 영상도 지난 3월 아프리카TV를 통해 왁싱 체험이 생중계로 방송됐고, 이후 전체 영상이 유튜브에만 게시됐다가 한 달 후인 4월 13일 왁싱샵 주인의 요청으로 삭제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유통됐으며, 검찰은 용의자가 5월에 이 영상을 보고 범행을 계획했다고 발표했다.

김 교수는 “콘텐츠 소비는 실시간으로만 이뤄지지 않고, 같은 콘텐츠라도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면 규제기준이 달라 사실상 플랫폼의 관리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동영상 등 인터넷에 떠도는 콘텐츠가 성 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다면 규제해야 한다”며 “성 평등의 관점에서 콘텐츠를 분석하면 명백히 성차별적인 것들이 많기 때문에 구체적 금지 기준을 담은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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