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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관저(官邸)를 없애자

입력
2016.12.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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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저를 없애자. 지나친 주장일까. 실제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런 결과를 의미하는 바는 아니다.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관저 건물만을 가리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불통과 은둔의 상징과도 같은 관저를 변화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의미한다. 관저의 사전적 의미는 ‘장관급 이상의 고관들이 살도록 마련한 집’이다. 현실에서 더 큰 의미가 부여된다. 대통령의 관저는 대통령의 권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관저에 드나들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에 얼마나 가까운지 판가름난다. 청와대 본관이라는 공식적인 근무 공간을 가진 대통령이 사생활 공간인 집에서 공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본관만 해도 심리적으로나 거리상으로나 청와대 보좌진들이 쉽게 방문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하물며 집인 관저에서 대통령이 근무하고 있다면 누구라도 방문하기 어려운 장소가 된다.

대통령과 국가 정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수석보좌진들이 일하고 있는 청와대는 조선 시대 왕이 거처하던 경복궁보다 더 뒤쪽에 있다. 청와대의 예전 이름인 경무대는 조선 시대 경복궁 후원 자리에 있었다. 대통령 관저 자리의 역사적 내용만 보더라도 굳이 왜 아직 관저를 그대로 사용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이 관저로 사용했고, 미 군정 시기에는 하지 중장의 거처였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관저로 사용하고 경무대라 불렀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 신관이 건축되었고 일제 잔재가 남아있던 구관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철거했다. 돌이켜보면 청와대 자리는 조선 시대 권위의 산물인 후원에 위치했고 한국 과거사의 어두웠던 장면과도 교차한다. 역대 대통령들 또한 청와대 그리고 관저에 머물면서 정상적인 임기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결국 4ㆍ19혁명에 의해 그 자리에서 끌려 내려오는 비운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관저 인근의 궁정동 안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권력의 단맛을 관저에서 맛본 후에는 현재까지 계속 긴 영욕의 역사를 보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 참여와 사람 사는 세상을 외쳤지만 임기 초 탄핵소추를 당하며 관저 생활 초반부터 곤욕을 치렀다. 관저 생활의 정점에 박 대통령이 서 있다. 동반 가족도 없고 국민과 결혼한 대통령이라고 했다. 국민은 대중들과 자주 만나고 민의를 청취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꿈은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국민과 만나야 할 시간에, 보좌진과 민생 현안을 고민해야 할 시간에 대통령은 국정 농단 세력에 둘러싸여 헤어나지 못했다.

미국 대통령은 국제 정치와 세계 경제에서 우리 대통령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더 보안과 경호가 요구되는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보좌진의 거리는 불과 몇 미터에 불과하다. 일반인들조차 백악관 담벼락 너머 오벌 오피스에서 근무하는 대통령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대영제국 총리의 관저는 다우닝가 10번지에 있다. 아침이면 국회의사당으로 출근하는 총리의 모습이 언론에 심심찮게 노출되기도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이웃집 아줌마 같은 분위기다. 관저의 은둔형 삶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우리가 존경하고 이상적으로 삼고 있는 정치인 중에 구중궁궐 관저에 살고 있는 인물은 없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은밀한 아지트 같은 ‘시크릿 가든’은 더 이상 필요 없다. 광화문 정부중앙청사로 출퇴근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일상이 소통으로 연결되는 대통령에게 촛불은 분노가 아니라 축복이다. 관저를 벗어나 출퇴근하는 대통령에게 비선이 기댈 언덕은 결단코 없다. 그래서 내뱉은 말이다. 관저를 없애자.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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