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사드 배치 저지 투쟁위’
철회 때까지 투쟁… 21일엔 상경
“농사 짓는다고 무시” 분노 속
주민들 기본성향은 친정부적
강정마을과 달리 외부세력 막고
“등교거부 안 돼” 평화시위 의지도
경북 성주가 사드(THAADㆍ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배치 반대투쟁 장기화를 선언하면서 국익과 주민 생존권이 격렬하게 충돌한 제2의 제주 강정마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성주 사드배치 결정은 장기적으로 여론수렴 등 절차를 거친 강정마을과 달리 전격 결정된 것이어서 정부의 군사작전식 입지결정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투쟁 장기전 태세 강정마을화 예고
성주 군민들은 17일 범군민비상대책위원회를 ‘성주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사드배치 철회 때까지 투쟁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21일 상경투쟁과 법정 투쟁에도 힘을 쏟기로 하는 등 장기전 태세에 돌입한 것이다.
외연적으로는 외부세력을 배제하면서 비교적 조용한 대응태세지만 폭풍전야 같은 긴박감은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주민은 “우리들을 정부의 안보정책에 반대하는 폭도로 몰지 말아달라”면서도 “하지만 주민 의견을 앞으로도 철저히 무시할 경우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군민 대응도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정부는 사드 전자파 유해성 우려에도 불구, 그 흔한 주민공청회 한 번 실시하지 않았다.
1995년 제주해군기지사업이 국방중기계획에 반영된 후 제주에서는 2002∼2005년 주민간담회와 언론토론회만 100여 회 열렸다. 참여정부 때인 2007년 6월 해군기지 건설이 결정된 뒤에도 타당성 조사, 환경검토 등 절차와 소송 등으로 공사가 4년 2개월이나 표류되다 2011년 9월 2일에야 대상지인 구럼비가 폐쇄됐을 정도다. “정부가 농사나 짓는다고 성주군민을 무시하는 거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성주군청 주민설명회도 군사작전식으로 전개했다. 성주군이 정부의 설명회 개최를 통보 받은 것은 14일 오후 10시쯤이다. 다음날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이 헬기를 타고 와 “사드 전파가 유해하지 않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겠다”고 밝혔지만 설명회가 아닌 ‘통보회’에 불과한 행사에 군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결국 계란과 물병이 날아들고 총리 일행은 6시간 이나 성난 군중에 붙잡혀 있어야 했다.
강정마을과 달리 외부세력 차단
강정마을에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시민단체가 기지 건설 반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성주군은 오히려 시민단체의 개입을 적극 차단하고 있다는 점도 구별된다. 김항곤 성주군수는 “외부단체가 사드 배치와 관련, ‘콩 놔라 팥 놔라’하는 사태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성주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원회’도 시민단체의 연대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성주지역에 박근혜 대통령의 선영마을이 있는데다 군민들의 성향도 친정부적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성주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 관계자는 “우리는 안보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사전절차나 통보도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생존권을 위협하는 데 대해 항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한 군민 설득과정 거쳐야
성주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는 출범식 결의문에서 평화시위로 사드배치 철회 때까지 투쟁한다고 밝혔다. 투쟁위는 “폭력시위는 투쟁위 방향이 아니고 물리력을 동원하지도 않겠다”고 밝히고 학부모들에게 초중고 학생 등교 거부를 막아달라고 요구하며 평화시위 의지를 보였다.
이재복 투쟁위 대표 공동위원장은 “사드가 배치되는 성산포대에서 성주 군민 3분의 2인4만5,000여 명이 사는 성주읍 일대는 북쪽으로 1.5㎞ 거리”라며 “농촌 마을에 사드를 배치한다면서 최소한의 성의와 절차도 밟지 않은 정부는 각성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친정부 성향의 성주군민들을 분노케 한 정부의 반성과 설득력 있는 대책이 있어야 제2의 강정마을화를 막을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사드배치가 국가안보를 위한 정부의 결정이더라도 지자체와 주민들과 소통하는 것이 정부가 우선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성주=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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