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독극물 피살 사건은 충격적이다. 국정원과 외신 등에 따르면 김정남은 13일 오전 9시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절차를 밟다가 신원 미상 여성 2명의 독극물 공격을 받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여러 정황상 북한 정찰총국 등에서 파견한 암살조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게 사실로 확인된다면 김정은 정권의 잔혹성과 반인륜성을 또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해 체포한 여성이 베트남 여권을 소지한 것으로 드러나 사건 진상과 배후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당초 추정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첫 번째 부인인 성혜림의 소생인 김정남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살해된 게 맞는다면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뒤 중국 마카오 등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해왔던 김정남은 김정은의 권력 승계 후 공공연하게 3대 세습 체제를 비판한 것 등이 김정은의 분노를 샀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이병호 국정원장은 15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 집권 이후 ‘스탠딩 오더’(취소할 때까지 계속 유효한 명령)였다”면서 “2012년에도 본격적 시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범행 배경으로는 잠재적 도전자 제거를 통한 김정은 권력기반 공고화, 소환명령 불응에 대한 응징, 남한 등으로 망명 저지 등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 원장은 “김정은의 편집광적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된다”며 김정은 개인성향 요인에 무게를 실었다.
북한은 아직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이번 사건이 고모부인 장성택 처형 등 김정은 집권 후 자행돼 온 일련의 잔혹한 공포정치와 같은 맥락인 것은 분명하다. 대낮에 인파가 붐비는 국제공항에서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살인극을 벌인 것은 탈북 망명자들에 대한 경고 성격이 짙다. 최근 귀순한 태영호 전 런던 주재 북한 공사 등 주요 탈북 인사들의 신변 보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고 있는 국면에서 이 사건이 불러올 수 있는 미묘한 파장도 우려된다. 엊그제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도발 등과 함께 소모적인‘북풍’ 논란의 소재가 될 수 있어서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북한발 여러 불안한 징후들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되 또 다른 혼란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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