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6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인한 위기 등과 관련해 국회에서 ‘국정에 관한 연설’을 했다.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연설 톤은 매우 강했다. 사실상 대북 정책의 전면적 전환을 천명했다.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의 핵 개발 의지를 꺾을 수 없고, 북한 핵 능력만 고도화시켜 결국 한반도에 파국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그 바탕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 정권이 핵으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국제사회와 함께 취해나갈 제반 조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북한이 더 이상 대화와 협상의 대상이 아님을 선언한 셈이다. 실제로 이날 연설에서는 북한과의 어떠한 대화 여지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이끌어내는 데 정부가 앞장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천명했다. 명시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김정은 체제가 붕괴에 이르도록 압박하겠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체제 붕괴’라는 단어를 공개적으로 입에 올린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노려 핵ㆍ미사일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와 교류협력 정책이 벽에 부딪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강경 압박 일변도의 몰아붙이기로 북 핵ㆍ미사일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우리정부가 개성공단 중단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를 선도한다고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 협력 없이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중ㆍ러와 연대를 강화한다지만 현실에서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배치 문제로 두 나라와의 마찰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채널이 차단된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이 끝없이 고조될 경우 안보와 경제 전반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은 불을 보는 듯하다. 당분간 대화를 언급할 상황이 아니지만 결국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틀을 찾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핵과 미사일을 체제유지의 제1 버팀목으로 여기는 김정은 정권의 인식을 바꿀 대안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민단합과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촉구하면서 “우리 내부로 칼끝을 돌리고 내부를 분열시키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남남갈등을 경계하기도 했다. ‘북풍의혹’같은 음모론 등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정당한 비판까지도 내부 분열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야당도 엄중한 안보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과거의 타성에 젖어 막연히 북풍 운운하는 무책임한 태도는 삼갈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예산 관련 시정연설이 아닌 별개 사안에 대해 연설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작금의 한반도 정세와 위기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도 이날 박 대통령의 국회 본회의장 입ㆍ퇴장 시 기립박수에 동참하는 등 모처럼 초당적 모습을 보였다.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연설을 위해 이날로 잡혔던 자신의 국회교섭단체대표연설을 하루 연기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연설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야당이 실망과 유감을 표명했지만, 적어도 안보 문제에 관해서는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임하는 자세를 정립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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