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임시 일용직 비율 41% 차지해도
청년 노인 위주 복지프로그램만
사회보장제도 보호 못 받아
불안한 현재ㆍ미래
친구 가족 등 사회적 관계 단절
주민등록 말소로 ‘투명인간’
노후 준비는 엄두도 못 내
가장 두려운 고독사
“쓰러지면 119 연락 누가 해줄지
수개월째 방치 TV 뉴스 보면
내 이야기 같아 가슴 아파…”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민식(51ㆍ가명)씨는 지난 16년간 가족, 친구, 이웃과 교류 없이 ‘나홀로’ 살아왔다. 본래 컴퓨터 부품을 제조하는 사업체를 운영했는데 30대 후반에 실패하면서 수억원의 빚이 쌓였고, 아내와 자녀를 남겨 두고 빚 독촉을 피해 긴 도피생활을 시작하며 혼자가 됐다.
자존감까지 바닥에 떨어지며 김씨는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해가 뜨기 전 인력시장에 나가 일용직 근로 일을 구해 하루 일당 8만원을 받으면, 며칠씩 집밖에 나오지 않고 술을 마시며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생활을 10년 넘게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거주불명으로 주민등록도 말소돼 사회에서도 ‘투명인간’이 됐다.
김씨는 “믿었던 사람에게 속아 평생 모은 재산을 탕진해 빈털터리가 되고 나니 하루아침에 ‘무능력자’로 보는 가족과 주변인들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었다”며 “사나이 자존심에 힘들어도 도와달라는 얘기를 하기 싫었고, 이웃이 나를 알아보는 게 싫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김씨는 해가 진 뒤에야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담배도 밤에만 밖에서 피운다.
중년의 1인가구가 위기에 처해 있다. 개인이 선택한 ‘화려한 싱글’도 있지만 김씨처럼 부도ㆍ실직ㆍ이혼ㆍ장애 등의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비자발적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홀로 중년'은 독거 노인처럼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며 소득, 고용, 건강, 주거 등에서 위기를 겪고 있어 ‘복지 사각지대’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안한 독신’ 나홀로 중년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가구의 비중은 전체가구의 28.6%로 2000년(15.5%)에 비해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남성 1인가구는 30대(22.2%) 다음으로 40대(19.5%), 50대(18.5%) 등 중년이 많고 60대(11.9%)와 70세이상(8.0%)의 노인은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여성 1인가구는 70세 이상(27.9%)에 밀집돼 있고 중년인 40대(11.2%)와 50대(15.0%) 비중은 적은 편이다.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1인가구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중년 1인가구의 증가는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가족해체와 사회적 실패를 겪으며 비자발적으로 홀로 살게 된 이들이 상당하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인구총조사’ 자료를 토대로 1인가구의 혼인 상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대(98.7%), 30대(87.2%)는 혼인을 하지 않아 홀로 살지만 50대(78.1%)와 40대(43.7%)는 이혼과 사별을 겪거나 배우자가 있음에도 홀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홀로 중년'은 경제적으로도 불안하다. 국회예산정책처의 ‘1인가구의 인구 경제적 특징’ 보고서를 보면 1인 가구는 전반적으로 고용의 질과 소득이 낮지만 40대 이후부터 그 정도가 심해진다. 40대의 경우 다인가구의 임시ㆍ일용직 비율이 11.6%인 반면, 1인가구의 경우 24.3%로 두 배가 넘는다. 특히 50대의 경우 1인가구의 임시ㆍ일용직 비율은 무려 41%에 달한다. 소득수준도 당연히 낮을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오현희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50대 1인가구의 특징을 ‘불안한 독신’으로 정의했다.
가족해체ㆍ경제적 좌절 ‘이중고’
인천 부평구에 사는 이원우(50ㆍ가명)씨는 10여년 전 한 대기업 협력업체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 3개가 절단돼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았고, 9년 전 이혼을 하면서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이혼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동네에 작은 음식점을 차렸지만, 혼자 이끌어 가기 벅차 빚만 2억여원 늘고 폐업했다. 실패가 거듭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 친구들과의 ‘사회적 관계’도 끊어졌다. 이씨는 “명절 가족모임에 나가면 이혼한지 5년이 지나도 여전히 ‘왜 헤어졌느냐’는 질문을 하는 친척들의 물음에 질려 몇 년째 명절도 홀로 보내고 있다”며 “가족을 꾸려 함께 사는 건 정상적인 삶으로 보고 혼자 살면 측은하게 보는 게 싫다”고 말했다.
이씨의 가장 큰 걱정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음식점 폐업 후 휴대폰 판매, 대형마트 물류센터 분류업무 등을 했는데 1년 넘게 같은 일을 한 적은 드물다. 이씨는 “늙어 병들면 돌봐달라고 할 가족이 없는데 노후준비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현재 일하고 있는 마트에서 정규직 전환 공고가 날 때 마다 지원해도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며 “직장 동료들은 ‘당장 돌볼 가족이 없으니 괜찮다’며 위로하지만 오히려 나는 가족이 없어 미래가 불안하다”고 했다.
30대에 남편과 이혼한 후 지금껏 홀로 살고 있는 정주연(55)씨의 걱정도 안정적인 일자리와 노후 대비였다. 정씨는 10년 가까이 운영하던 속옷가게를 몇 년 전 그만두고 콜센터 상담 등의 일을 하고 있는데, 한 달 소득은 200만원 남짓이다. 전세대출 이자 35만원, 친정어머니 생활비 30만원을 떼고 남는 돈으로 생활하면 저축이 빠듯해 각종 모임을 줄여 지금껏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는 단 두 명뿐이다. 정씨는 “형제들은 모두 자녀를 키우고 있어 부모님 생활비까지 도와드리긴 어렵다는 이유로 내가 부담하고 있지만, 아직 집도 없는 나의 노후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막막하다”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75세까지는 일을 할 생각이지만 갑자기 몸이 아파 목돈이 필요해도 기댈 곳은 없다”고 걱정했다.
돌봄 공백… 고독사 위험 증가
사회적 관계 맺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나홀로 중년'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두려운 것으로 ‘고독’을 꼽는다. 가족이 없거나, 있지만 없는 것과 같은 1인가구여도 질병과 돌봄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성신부전증으로 일주일에 한차례씩 투석을 받는 박인수(59)씨도 아내와 사별한 후 자녀와 연락이 단절됐고, 이웃이나 가족과의 교류도 없지만 늘 ‘고독사’를 걱정한다고 했다. 박씨는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집안에서 쓰러진다면 주위에 아무도 없어 119에 연락해줄 사람도 없다”며 “뉴스에서 수개월째 방치돼 무연고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 내 이야기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박씨의 우려가 기우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고독사에 대한 공식 정의와 정식 통계가 없지만, 부산시에서 지난해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발생한 무연고 사망 51건을 분석한 결과 50~64세의 장년층이 29건으로 65세 이상 노인(15건)보다 두 배 가량 더 많았다. 성별로 보면 남성(43건)이 여성(8건)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고독사로 분류된 이들은 76%가 만성질환자였고, 알코올 의존 경향(55%)이 있었다. 이에 부산시는 중년 1인 남성가구를 고독사 고위험군으로 보고 있다.
서울 양천구도 관내에서 50대 고독사가 늘자 지난해 만 50~64세 홀로 사는 남성 6,841명을 직접 대면하는 실태조사를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실시했다. 조사 결과 428명(6.2%)이 생계, 일자리, 정신건강, 주거, 가족관계 등에서 1가지 이상 위기 상황에 처해 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파악됐다. 위기가구를 발굴해 지원하는 최민정 한빛종합사회복지관 사례관리팀장은 “독거남성들 대부분 홀로 산지 수년째여서 초보적인 살림 기술은 갖추고 있지만, 건강검진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거나 치아건강, 만성질환을 방치해 악화되는 등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있었다”며 “특히 홀로 지내도 사회적 활동이 왕성한 중년 여성들에 비해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중년 남성들은 이웃과도 교류가 적어 위기를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위기에 처한 '나홀로 중년'이 늘어나면서 일부 지자체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지만 심리치료나 건강진단 등에 그칠 뿐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로 보호하기는 쉽지 않다. 복지제도 지원 자격요건이 노년층과 청년층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중년층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중년의 위기를 방치하면 고령층 진입 시 빈곤이 심화되고 최악의 경우 고독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지자체 위기발굴 시스템을 활용해 고립된 이들을 발굴해 공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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