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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를 잘 안다고? 우린 이제 문턱만 넘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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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를 잘 안다고? 우린 이제 문턱만 넘은 꼴

입력
2017.04.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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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시대에 접어들어 유전자에 대한 얘기는 많지만, 정작 유전자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는 그 길잡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유전자 시대에 접어들어 유전자에 대한 얘기는 많지만, 정작 유전자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는 그 길잡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은 유전자(gene)와 유전체(genome)를 구별할 수 있는가? 유전체와 염색체는? DNA와 RNA는? 이런 용어들은 막상 알고 있는 것 같아도, 질문을 해보면 부모 세대로부터 자식 세대로 무엇인가가 전해져 내려온다는 ‘유전(닮음)’ 현상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답하기 무척 어렵다. 사전을 참조하거나 구글로 검색해보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만, 막상 이 용어들을 위키백과 같은 데서 찾아보면 더 큰 낭패에 빠지는데, 더 알기 힘든 용어를 동원해 그나마 알듯 말듯한 우리 자신감을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유전자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에 보편적으로 자리잡는 데는 올해 한국을 방문한 리처드 도킨스와 그의 베스트셀러 저작 ‘이기적 유전자’(1976)의 기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 때문인지 유전자란 용어가 ‘이기적’이라는 수식어와 한 쌍으로 돌아다닌다는 경우가 많다. 스티븐 핑커는 이에 대해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란 ‘동물들은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그 이론을 정확히 이해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포함하여 동물들은 유전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쏘아 붙인 바 있다. 애초부터 알기도 쉽지 않고,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서 출발하기 쉬운 분야가 바로 유전자 담론, 생명 과학 분야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게 우리나라만이 아닌 전세계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다소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유전과 생물학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그 해악이 너무나 크다. 1920~30년대 독일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우생학적 인종청소는 인류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우생학에 바탕을 둔 여성에 대한 강제적 불임시술은 그 야만성이라는 측면에서 본질이 다르지 않다. 한편 이 시기 소련에서는 유전학을 ‘부르주아적 변태 학문’으로 규정짓는 ‘리센코주의’가 채택되었는데 그것은 ‘적응이 직접 유전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라마르크주의의 부활이었으며, 밀과 닭과 같은 농축산물마저 사회주의적으로 개조시키려는 ‘정신승리법’에 지나지 않았다. 소련의 농업생산력은 격감했고 생명과학은 궤멸됐다. 리센코주의를 모방하던 중국 또한 대약진운동 기간 수천만명의 아사자를 내기에 이르렀다. 사이비 과학은 전체주의 체제에 봉사하고, 거꾸로 전체주의 체제가 사이비 과학을 강화한다는 교훈만 얻었을 뿐이다.

이중나선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DNA가 유전 현상에서 차지하는 비밀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건 인류 역사 전체를 24시간으로 표현할 때, 밤 11시59분 59초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 이 분야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진화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 찰스 다윈의 1859년이고, 그레고어 멘델이 ‘식물의 잡종에 관한 실험’을 1866년에 발표했지만 사장되어 있다시피 하다가 1900년에 이르러서 휘호 더프리스 등 3인에 의해 겨우 재발견되었다.

1930년대 들어서 자연선택이론과 유전법칙이 종합되어 신다윈주의로 발전하였고 줄리언헉슬리가 1942년에 ‘진화: 현대 종합설’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는데, 유전적 메커니즘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한 것이었다. 왓슨과 크리크에 의해 발견된 DNA 이중나선의 구조도가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것은 1953년이며 미국 정부의 주도로 인간 전체 유전자 지도를 그려 낸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1990년에 시작되어 2000년에 끝났다. 이를 통해 유전과 관련해 많은 비밀이 풀릴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더 많은 질문거리를 던졌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이고 보면, 유전과 관련해 인류는 겨우 문턱을 넘어선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ㆍ이한음 옮김

까치 발행ㆍ685쪽ㆍ2만5,000원

최첨단 연구가 이럴진대 일반인의 무지와 오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2011년 ‘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로 퓰리처상을 받은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책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는 이런 현상을 해소하기에 적당한 책이다. 저자는 인도 태생의 뉴욕 컬럼비아대 교수로서 암 연구자이자 전문의이며 뛰어난 저술가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가계에 조현병 유전자가 전해오며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삼촌, 할머니와 아버지를 지켜봤던 어릴 적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책은 총 5부로 나뉘어 있는데 유전자 연구에 관한 연대기적 기록인 동시에 ‘유전자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이다. “이 책은 중요한 질문에 대한 논쟁과 숙고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좋은 책’이고, 오랜 기간에 걸쳐 수집된 방대한 자료와 숙성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저술된 ‘잘 쓴 책’이며, 쉽고 흥미롭게 서술되어 비전문가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잘 읽히는 책’이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철희 교수가 어떤 책의 추천사로 쓴 글이다. 우연히 읽은 이 추천사를 무케르지의 신간에 대한 나의 추천사로 훔쳐올 수 밖에 없다.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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