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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등록 : 2017.08.08 15:18

[김진석의 우충좌돌] 팩트를 말하면 폭력이 되는 세상

등록 : 2017.08.08 15:18

비틀린 현실이 좋은 말 설 자리도 뺏어

개혁 시늉도 결국 팩폭 피하기의 방편

사회적 절차로 정당화하면 그나마 다행

세상 빛을 본 유행어 가운데 ‘엉뚱하고 삐딱하면서 우스우면서도 심각한’ 말을 꼽자면? ‘팩트 폭력’, 줄여서 ‘팩폭’을 꼽을 수 있다.

아직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나도, 그냥 ‘엉뚱하고 삐딱하며 우습기만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 말에 심오함과 심각함이 깃들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도 팩트를 말해도 되고 또 말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그러나 이미 상당히 비틀린 현실에서는, 팩트를 말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다. 보편적으로 좋거나 옳은 말은 사라지고 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과거엔 좋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 말은 ‘낭만을 착취하는’ 폭력으로 여겨진다. 다수의 젊은이가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려고 애 쓰는 사회에 대해 과거엔 비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무원 되기도 힘든 현재 상황에서는, ‘젊은이가 큰 꿈을 가져야지!’라는 지적은 폭력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심각하지만, 팩폭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실제 교육 과정이 여러 면에서 폭력적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교육의 목표가 많건 적건 좋은 학력을 쌓아서 좋은 직업을 얻는 데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나 조부모의 재산도 능력이라는 사실은 쉽게 부정하기 힘들다.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생각이 없거나 위선적일 수 있다. 눈이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은, 그 사실과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더럽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은 평소엔 폭발성을 띤다. 그래서 극단적인 사건이 생길 때까지, 그때까지는, 펙트는 사적으로만 소비된다. 팩트는 일종의 시한폭탄이 된다. 그러다, 부정한 방식으로 대학에 들어간 정유라가 ‘돈도 실력이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때, 폭탄은 비로소 터진다. 물론 당시에 부정한 인간에 대한 분노가 있었지만, 그렇게만 해석한다면 팩트의 폭력성을 간과하고 너무 도덕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냥 말하기 불편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그래서 사회를 병들게 하는 폭력이자 폭탄이 있다. 다만 평소엔 스스로도 그 말을 하던 사람들이 이번엔 그 말을 공개적으로 한 인간에게 분노했다. 다행히 팩폭은 찌질한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데 기적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돈도 실력이다’라는 말은 평소엔 공적인 파괴력을 가지지 못한다. 다만 자학하거나 가학하는 짓으로 표현된다. 그 대신, 폭탄을 건드리지 않고 피하는 일만 반복된다. 기껏 수능 몇 과목을 절대평가 하느니 마느니, 하는 문제가 교육 과제가 된다. 그러나 그 수준의 과제에 매달리는 한, 정부도 팩폭을 피하면서 개혁하는 시늉만 한다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수능을 9등급으로 절대평가하는 수준으로는 개혁은 일어나지 않는다. 수능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시스템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도 비슷한 등급제를 시행했지만, 시스템을 바꾸지 않았기에 효과가 없었다. 시스템 개혁 없이 수능성적만 절대평가하는 일은 무능한 정책의 재판이 되기 쉽다. 5등급 정도로 단계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 차별성을 줄인다는 점에서는 효과적이겠지만, 딸랑 그 정책만 도입할 경우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특이한 점은, ‘수능성적이 실력’이라는 말도 팩폭이라는 것이다. ‘돈도 실력’이라는 말보다는 덜하지만, 그것과 뗄 수없이 연결된 팩폭이다. 돈이 실력인 사회에서 점수 하나로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경쟁을 해야 하는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폭력이다. 이 팩폭을 다루기 위해서도, 수능 절대평가보다 더 혁신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 교육의 목표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성을 제공하는 것이라고만 말하는 사람은 선의를 가졌을 수는 있지만, 팩폭은 피하고 있는 것이다. 팩트를 말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된 세상에서, 폭력이 아예 없기를 바라기 어렵다. 그나마 사회적 절차나 결과를 통해서 정당화할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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