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창고란]
일종의 간식 나눔 이벤트로 지난 5월 SNS ‘어라운드’ 이용자들 사이에서 시작됐다. 지하철역이나 학교 등의 물품보관함을 대여해 타인을 위한 간식을 넣어 두고 SNS를 통해 비밀번호를 공유한다. 간식을 꺼내 먹은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간식을 채워 두는 식이다. 이 때 응원과 격려, 위로 메시지를 첨부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올해 5월 등장한 이후 삭막한 일상 속 나눔과 힐링의 공간으로 주목받아 온 달콤창고가 최근 들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SNS ‘어라운드’의 위치 정보 포스팅 ‘달콤지도’를 토대로 살펴본 결과 달콤창고 개수가 가장 많았던 지난 9월 서울에만 30개였던 것이 20일 현재 19개로 줄었다. 특히, 지하철역 물품보관함에 개설돼 신분이나 나이에 관계 없이 누구든 이용이 가능한 달콤창고는 같은 기간 16개에서 7개로 크게 줄었다.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달콤창고 수가 감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만만치 않은 대여료다. 지하철역 물품보관함을 한 달 대여하는데 드는 비용은 5만5,000원, 보증금 5,000원은 해지 시 돌려받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마음을 나누자는 취지와 이용자 대부분이 젊은층이란 사실을 감안할 때 혼자서 지불하기엔 부담스러운 액수다. 이용자 수가 많은 편이던 서울 강남역 달콤창고마저 물품보관함 대여 기간을 연장하지 못해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달콤창고 석달 새 30곳서 19곳으로 줄어
지하철역 보관함 월 대여료 5만5000원
주로 젊은층 이용… 혼자 내기엔 버거워
대여비용에 대한 부담 외에도 달콤창고가 줄어드는 이유는 또 있다. 일부 이용자들의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인해 다수의 순수한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다음달 물품보관소 대여료를 십시일반으로 모으기 위해 넣어 둔 저금통을 통째로 도난당하는 일이 강남역과 잠실역 등에서 벌어졌다. 사비로 대여료를 지불하고 잠실나루역에 달콤창고를 개설한 한 이용자는 누군가 만료 전 대여를 해지하고 보증금 5,000원을 가로채 간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미 달콤창고 안에 있던 간식과 응원 메시지까지 모두 사라진 뒤였다. 이런 식으로 피해자가 발생하고 나면 이용자의 양심에 의지해야 하는 달콤창고 유지는 사실상 어려워진다.
대여료 한 푼 두 푼 모은 저금통 도난
어떤 이는 간식 안 채우고 다 털어가
관심 커지자 순수한 목적 사라질까 우려도
‘먹은 만큼 다시 채워 넣는다’는 달콤창고의 불문율이 흔들린다는 점 역시 이용자들 사이에 불신을 쌓고 있다. 최근 강변역 내 달콤창고를 이용하려던 이용자가 한 학생이 간식을 싹쓸이 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주의를 줬다는 내용을 어라운드에 포스팅하기도 했다. 강남역에서 양말 판매업을 하는 박모(31ㆍ남)씨는 20일 “강남역 4번 출구 쪽 달콤창고를 여러 번 채워 두었는데 먹는 사람만 있고 다시 채워 놓는 사람은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그런 건지 한 사람이 다 털어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채우다 채우다 지쳐서 아예 가게에 공간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박씨가 상품 수납함 한쪽을 비워 달콤창고를 위한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지만 이용자가 적어 창고는 거의 비다시피 했다. 어라운드에는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애초의 순수한 목적이 희미해지고 업체 광고 같은 상업적인 목적이나 범죄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늘 것을 우려하는 이용자들의 포스팅이 꾸준히 게시되고 있다.
물품보관함의 ‘흑역사’
서울 지하철에 등장한 지 35년, 공공장소의 물품보관함에는 다양한 쓰임새만큼 파란만장한 역사가 담겨 있다. 최근 들어 달콤창고로 변신하거나 연인 또는 친구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약속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누가 어떤 물건을 넣는지 일일이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설치 초기부터 범죄에 악용되는 일이 잦았다. 1980년대 절도범들이 물품보관함을 장물 보관 및 전달 장소로 이용하거나 미신고 불법무기를 몰래 숨기다 발각되는 경우도 있었다. 199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부부간첩단 사건 수사 결과 간첩들이 시외버스터미널의 물품보관함을 무기나 공작금수집정보를 공유하는 접선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지하철 물품보관함을 ‘국가 안전금고’라 속이는 신종 보이스피싱 사기가 기승을 부리자 경찰이 지하철역마다 ‘현금을 보관하지 말라’는 경고문구를 붙여 두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엔 경남 창원에서 대형마트 물품보관함을 이용한 마약 밀매가 적발되는가 하면 일본에서 토막살해 사건 피해자의 시신을 도쿄역 물품보관함에 숨겨 둔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80년대 절도범 장물 보관장소로 이용
97년 간첩들 접선 수단으로 활용
‘국가 금고’라 속이는 보이스피싱 등장
물품보관함에 양심까지도 보관하는 양심 실종 사건도 끊임 없이 일어났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7월 한 쇼핑센터 물품보관함에 강아지를 넣어 두고 쇼핑을 한 주인의 이야기가 SNS에 퍼지면서 동물학대 논란이 일었다. 한술 더 떠서 아예 물품보관함에 반려견을 유기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넣고 사라지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오히려 범죄자가 물품보관함을 통해 최소한의 양심을 지킨 경우도 있다. 1983년 충남예산문화원에서 추사 김정희의 난초화 등을 훔친 범인이 이를 외국으로 밀반출하려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반납한 것이다. 범인은 대전역 물품보관함에 고서화를 넣어 둔 후 열쇠 위치를 경찰에 알렸고 경찰은 고서화 32점을 모두 회수했다. 이 밖에도 주요 국제 회의를 앞두고 테러 가능성 때문에 전면 폐쇄되거나 메르스가 창궐했을 땐 소독 대상 1순위가 된 것도 공공장소 내 물품보관함이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흑역사’가 아닐 수 없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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