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 3단지 아파트는 지난 달 3건의 전세가 월세로 바뀌어 거래됐다. 두 곳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 더 큰 평형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이었다. 반면 전세 계약은 한 건도 성사되지 않았다.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10개 물건 중 월세가 6~7개, 전세는 1~2개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세대수가 7,748가구에 달하는 경기 성남 서현동 분당시범단지에는 반전세를 포함한 월세 물량이 총 134개가 나와 있다. 하지만 순수 전세 물량은 34개에 불과하다. 서현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월세는 당장 계약이 가능하지만 전세는 적어도 석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월세 시대다. 임대시장에서 전세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대신 그 자리를 월세가 메우고 있다. 전셋값 폭등이 시작된 2, 3년 전부터 월세로의 전환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면, 초저금리 시대에 접어든 올 들어서는 가속 페달이 밟힌 형국이다.
3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전국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의 비중은 41.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월세 거래를 합하면 전세를 이미 추월했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월세 시대의 도래가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월세 살이의 주거비 부담은 전세보다 훨씬 크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가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올해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74만5,000원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작년 8월 서울 아파트 월세 세입자의 주거비용이 전세보다 연간 972만원이 더 든다는 조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3분기 평균 전월세 전환율은 7.2%로 시장 평균예금금리의 3배를 웃돈다. 대출을 받아 전세보증금을 충당하는 것보다 직접 월세를 내는 것이 몇 배나 더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월세 전환이 다가구 주택이나 저가 아파트 등에 더욱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월세 시대가 주거의 하향화와 경제 양극화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최근 이 같은 문제점을 인정하고 임대시장에서 월세가 대세가 됐음을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월세 시대를 대비하는 준비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실제로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월세 가구수는 실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보증금이 없는 월세 가구의 경우 자발적인 신고를 하지 않으면 통계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탓이다. 2010년 통계청 인구 총조사 결과 전체 임대차 가구 가운데 약 80%는 비제도권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임대시장의 공급과 관리를 전문화하는 제도 도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해외 임대시장이나 국내 금리에 비해 높게 책정된 월세 임대료를 낮춰 서민들의 부담을 경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장기적으로는 후진적인 임대차 제도 전반에 대한 손질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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