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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한국은 없다

입력
2017.04.0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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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정부 선제타격론 급부상으로

한반도 정세 일촉즉발 위기 치달아

넋 놓고 있다 전쟁터 되면 어쩔텐가

초등학교 시절 부엌을 헤집고 다니는 쥐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수챗구멍을 막은 뒤 빗자루를 들어 공격했다. 쥐가 몽둥이를 피해 찬장 위로 올라갔다. 내가 슬금슬금 다가가자 갑자기 내 얼굴로 뛰어들었다. 깜짝 놀란 나머지 부엌문을 열고 쥐를 내보냈다. 퇴로를 열어 준 것이다.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도 문다고, 궁서설묘(窮鼠齧猫)를 일찍이 경험한 셈이다. 쥐 한 마리조차 제압이 쉽지 않았다.

하물며 북한은 어떨까. 미국은 ‘선제타격’이라는 몽둥이를 들고 북한을 다잡으려 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무기로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버틴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중 양국의 지정학적 충돌지점은 남중국해와 한반도다. 특히 핵 개발에 몰두하는 북한은 미국에 눈엣가시다. 미중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도널드 트럼프정부의 일관된 언급을 보면 곧 북한을 선제타격할 태세다. 미국이 7일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군 공군기지에 60∼70발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집중 발사한 것은 북한에 시그널을 보내는 효과가 없지 않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걸까. 1994년 빌 클린턴정부는 북한이 핵 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자 기존 미군 병력 3만7,000명 외에 5만명을 한반도에 추가로 파병하고, 400여대의 전투기와 50척의 전함 등 대량의 무기를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김영삼정부의 만류와 예상되는 엄청난 피해 때문에 보류됐다. 선제타격 시뮬레이션 결과 북한의 반격으로 일주일 만에 500만명이 사상하고 1조달러 이상의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

지금 트럼프정부의 입장은 “모든 선택지(option)가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선제타격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당연히 협상을 위한 엄포로 간주하는 것이 적절하겠지만, 대북한 선제타격론이 대두했던 23년 전과는 상황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핵과 미사일 실험을 통한 북한의 기술력이 상당 수준으로 진화한 때문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괌을 넘어 시애틀 등 미국 본토 서부지역까지 타격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할 정도다. 미국 입장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협상수단에 불과할 뿐 선제타격 가능성은 없다는 분석도 있다.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주한미군과 가족, 사업가, 원어민 교사 등을 포함하면 30만명 정도의 미국인이 한국에 머물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미국 민간인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미군 관계자는 “한국에 체류 중인 미국 민간인에게 철수명령이 떨어지면 선제타격의 징후”라고 했다. 지난해 말 주한미군은 주한 미국인을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대피시키는 ‘커레이저스 채널’(Courageous Channel) 훈련을 2009년 이후 7년 만에 실시했다.

미국의 선제타격론은 철저하게 그들의 국가이익, 혹은 집권세력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트럼프는 북한을 ‘엄청 큰 문제’(a big big problem), ‘인류의 문제’(humanity problem)라고 격렬하게 비판한다. 일단 주적(主敵)을 뚜렷이 명시하는 단계가 아닐까 싶다. 그런 다음 각종 명분을 축적한 뒤, 공격에 돌입하는 패턴을 보였던 미국의 분쟁지역 참전 방식이 어른거린다. 토머스 프리드먼 NYT 칼럼니스트의 언급대로 트럼프가 ‘석유 재벌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라면 더욱 호전적이 될 소지가 있다. 특히 ‘러시아 스캔들’로 곤경에 처한 ‘럭비공’ 트럼프가 정권의 위기를 외부로 돌리려는 속셈이라도 있다면 정말 큰 일이다. 퇴로가 막힌 북한 역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일이다.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돌고 있는데도 정작 당사자인 한국의 의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은 안중에 없는 듯한 미국의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행태도 걱정이다. 우리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넋 놓고 있다가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면 어쩔 것인가.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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