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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사육사와 코끼리, 서로를 위한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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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사육사와 코끼리, 서로를 위한 선택은

입력
2018.08.18 13: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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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미소니언동물원에 코끼리와 사육사 서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훈련벽이 설치되어 있다.
미국 스미소니언동물원에 코끼리와 사육사 서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훈련벽이 설치되어 있다.

동물원에 가면 꼭 코끼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본다. 더위를 피할 수영장과 그늘이 있는지, 추운 겨울에 지낼만한 따뜻하고 넓은 공간이 있는지, 사회적 동물인 만큼 무리를 이루고 사는지 등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갖는 부분은 사육사가 코끼리와 같은 공간에 있는지 여부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동물원에서 사육사가 코끼리를 훈련하기 위해 코끼리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했다. 사육사는 거대한 코끼리를 다루기 위해 끝이 뾰족한 막대기인 불훅(Bullhook)을 썼다. 코끼리는 불훅에 찔리는 것을 피하려고 사육사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이 도구의 또 다른 용도는 코끼리의 공격으로부터 사육사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알려지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꽤 많은 사고가 있었다. 1987년 1월 11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동물원(Fort Worth Zoo)에서는 샘이라는 코끼리가 사육사를 죽인 것을 포함해 미국에서 1987년부터 2015년까지 코끼리 사육사 18명이 죽었고 135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 휴스턴 동물원도 코끼리 훈련시 사육사와 훈련사의 자유접촉 대신 보호 접촉을 하기 위한 기둥을 설치해 두었다.
미 휴스턴 동물원도 코끼리 훈련시 사육사와 훈련사의 자유접촉 대신 보호 접촉을 하기 위한 기둥을 설치해 두었다.

1991년, 미국 샌디에고 야생동물공원(San Diego Wild Animal Park)의 두 훈련사는 미국 동물원수족관협회 컨퍼런스에서 전통적인 코끼리 훈련법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전통적인 훈련은 자유 접촉(Free contact), 새로운 훈련법은 보호 접촉(Protect contact)이라고 불렀다. 보호접촉 시 필요한 것은 사육사와 코끼리 사이의 훈련벽이다. 사육사는 훈련벽 기둥 사이나 뚫어 놓은 창으로 코끼리의 코나 발 등 몸의 일부만 내놓도록 훈련한다. 코에 물을 넣었다 빼 결핵 검사도 하고 귀에서 채혈도 할 수 있다. 먹이를 이용해 코끼리가 자발적으로 훈련에 참여하도록 하기 때문에, 마취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코끼리에게 공격 당할 염려 없이 안전하게 훈련할 수 있다. 만약 사육사가 훈련벽에서 훈련을 하다가 해를 가하면 코끼리는 훈련을 거부하고 멀어지면 그만이다. 이 방법은 서로를 보호할 수 있다.

미국 달라스 동물원의 코끼리 사육장. 저 멀리 코끼리가 보인다.
미국 달라스 동물원의 코끼리 사육장. 저 멀리 코끼리가 보인다.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는 이처럼 아주 특정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육사가 코끼리와 같은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정해놓았다. 미국에서는 대부분 AZA의 인증을 받은 곳을 찾아갔기에, 코끼리가 있는 곳에는 훈련벽이 보였다. 많은 동물원들이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었다. 하지만 훈련 방법을 바꾸지 않은 곳도 있었다. 포트워스 동물원은 수컷만 보호접촉 훈련을 하고 암컷과 새끼는 자유접촉 훈련을 계속했다. 결국, 2015년 사육사가 코끼리에게 공격받아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동물원은 고용인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1만2,500달러(약 1,400만원)의 벌금을 냈다. 포트워스 동물원이 낸 벌금은 동물과 사육사가 감당해야 할 위험 부담에 비해 너무 적은 금액인 듯하다. 동물원은 반드시 모든 동물과 사육사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누군가 결정을 미룰수록 동물은 고통 받고, 사고가 날 가능성은 커진다.

글ㆍ사진 양효진 수의사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동물원 큐레이터로 일하고, 오래 전부터 꿈꾸던 '전세계 동물 만나기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자연보호구역, 수족관, 농장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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