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은 진짜배기다.”
어린 선수의 성장 가능성을 정확히 가늠해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경험 많은 에이전트 의견이다. 에이전트에게 선수는 비즈니스 상품이기도 하다. 돈을 벌어줄 선수인지 아닌지 냉정히 판단해야 하기에 최대한 거품을 빼고 본다.
에이전트들이 하나같이 엄지를 드는 선수 중 한 명이 이강인(17ㆍ발렌시아)이다. 탄탄한 기본기, 넓은 시야에 날카로운 킥까지 갖췄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이강인은 스페인 국가대표 미드필더 사비의 경기 조율 능력, 이니에스타의 결정적인 기회를 만드는 능력을 모두 지녔다”고 평했다.
인성도 나무랄 데 없어 보인다. 이강인은 한국 U-19 대표팀에 몇 차례 뽑혀 훈련하고 경기도 뛰었다. 대표팀 관계자는 “두세 살 위 형들보다 유명한데도 거만함 같은 건 없었고 겸손했다. 그런데 운동장만 들어가면 악착같아지더라”고 했다. 발렌시아는 이강인이 대표팀에 소집돼 한국에 올 때마다 인터뷰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어린 선수가 언론에 많이 노출돼 좋을 일이 없다는 이유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이강인의 단점은 빠르지 않은 스피드다. 스피드는 훈련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발이 빠르지 않은 만큼 체력, 기술적으로 더 완성돼야 유럽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무럭무럭 성장 중인 이강인이 드디어 1군 무대 데뷔골을 터뜨렸다. 그는 12일(한국시간) 스페인 발렌시아 에스타디 메스타야에서 열린 바이엘 레버쿠젠(독일)과 프리시즌 경기에서 2-0으로 앞선 후반 33분 교체 투입된 뒤 후반 41분 헤딩으로 쐐기골을 넣었다. 발렌시아는 3-0 완승을 거뒀다. 프리시즌 5경기 만에 나온 1군 무대 데뷔 득점이다. 이강인은 앞서 스위스 로잔 스포르, 네덜란드 아인트호번, 잉글랜드 레스터시티와 에버턴전까지 1군 프리 시즌 4경기 모두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강인은 당초 다음 시즌인 2019~20시즌에 1군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프리시즌에서 연일 좋은 활약을 보이고 골까지 넣자 1년 앞당겨 2018~19시즌에 1군에 진입할 수 있을 거란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발렌시아는 21일 오전 3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2018~19시즌 개막전을 치른다. 프리메라리가는 유럽연합(EU) 시민권이 없는 선수는 팀 당 3명까지만 출전 가능하도록 규정한다. 이강인이 프리메라리가 무대를 누비려면 당장 바늘구멍 같은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이강인의 천문학적인 바이아웃 금액이 국내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지만 이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발렌시아는 지난 달 이강인과 2022년까지 재계약하며 바이아웃을 8,000만 유로(1,058억)로 책정했다고 발표했다. 한 에이전트는 “이는 발렌시아가 당분간 이강인을 이적시키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 이강인의 지금 몸값이 1,000억이라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며 “유럽에서 특급 유망주 소리를 듣다가 사라진 선수가 얼마나 많나. 이강인은 분명 가진 게 많은 선수다. 주변에서도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말고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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