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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스펙'이 헛되지 않으려면

입력
2015.04.1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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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대졸 실업자 수가 50만명을 넘어섰다. 1999년 6월 관련 통계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단군 이래 최고라 평가 받는 스펙도 무용지물이다. 대학가에서는 취춘기(취업 사춘기), 자소설(자기소개서를 비아냥거리는 표현),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 청년실신(청년 실업자나 신용불량자), 장미족(장기간 취업을 못한 사람), 이케아세대(뛰어난 능력과 스펙에도 대우를 못 받는 세대) 등과 같이 자조 섞인 신조어가 유행이다.

백가쟁명을 논하고 미래를 탐구해야 할 대학 강의실은 취업준비로 식민화된지 오래다. 대학생들은 구직의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졸업을 미루고, 어학연수를 떠나며, 취업 사교육에 집중한다. 군복무 등의 사정으로 우리나라 대졸자들의 최초 취업 연령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데 최근에는 노동시장 여건으로 점점 더 미뤄지고 있다. 30년 교육 받고 30년 근로하는 시스템이니 다른 나라에 비해 일하는 시간이 10년은 짧다.

이들을 지원해야 하는 부모들 사정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보내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낌 없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학원특구로의 교육 이민에도 주저함이 없다. 대학에 보내놓고도 스펙의 축적을 위해 유학, 어학연수, 해외봉사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정이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청년층 고용기회가 확대될 수 있을지 해답이 쉽지 않다. 우선 풀어야 하는 과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일자리의 격차를 해소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분절되어 있으나 기업규모를 기준으로 한 분리와 차이가 결정적이다. 임금 및 근로조건 결정에도 기업규모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직자들의 구직목표는 적성, 직무, 능력 보다는 기업규모를 기준으로 결정되며 따라서 대부분 구직자들에게 대기업은 제일의 취업목표가 되고 있다.

직무가 아닌 기업규모가 취업의 결정요인이 되다 보니 소위 스펙의 내용과 특성이 불명확해지며 그 결과 구직자들의 ‘스펙 쌓기’도 불확실 경쟁으로 과열될 수 밖에 없다. 즉 스펙이라는 것은 특정 직무의 수행을 위해 필요한 지식, 기술, 경험 등의 역량 명세를 일컫는 말이나 직무를 전제하지 않다 보니 능력이 정의되지 못하고 이러한 불확실로 인해 무분별한 투자가 반복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기업의 규모가 채용시장의 선호함수를 결정하는 시스템 하에서는 현재의 악순환을 극복하기 어렵다. 특히 직무급으로의 임금체계 개편, 기업 내 직무의 전문화와 세분화, 능력중심 채용 체계로의 전환 등을 고려하면 기존에 중요하게 고려되던 전통적 스펙은 더 이상 유용한 기준으로 지속하기 어렵다.

이러한 조건에서 최근 여러 기업들이 도입을 추진, 활용을 확대하고 있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따른 채용 등 인사관리 체계 개편은 주목해 볼 만하다. NCS는 직무에 따라 능력의 국가표준을 설정하고 이를 채용과 인사평가의 기준으로 적용하기 위한 방법이다. 지금까지 학력과 학점 및 외국어 구사능력 등이 채용을 위한 일반적 기준으로 활용되었다면 NCS 시스템에서는 별도의 직무적합성 소유 여부가 채용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다. 이미 일부 기업에서 이와 같은 방법들을 활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130여개 공공기관들이 NCS 기반 채용과 인사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직무적성 등을 기준으로 한 능력 중심 채용 방법의 도입은 우수인력 선발뿐만 아니라 임금직무체계의 개선, 재직자 경력관리,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요컨대 기업규모가 구직의 결정요인으로 지속되는 한 우리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일자리 부족은 개선되기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직무형 노동시장으로의 전환이 준비 되어야 고용시장의 개선이 모색될 수 있으며, NCS형 인사관리 체계는 이를 위한 방법론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NCS가 기존의 전통적 스펙에 추가되는 ‘또 하나의 스펙’으로 상대화되지 않도록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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