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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 기자

등록 : 2015.09.15 14:21
수정 : 2015.09.16 05:04

64마리 키울 자신 있나요

[고은경 기자의 반려배려]

등록 : 2015.09.15 14:21
수정 : 2015.09.16 05:04

서울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마친 삼색이. 카라 제공

“제가 밥 주는 길냥이가 임신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회사 후배가 집 주변에 사는 길고양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고 항의하는 주민과 불화도 있다고 했다. 길고양이들의 생존율이 낮고, 1년에 여러 번 임신을 하는 암컷 고양이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은 들어봤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먼저 암컷 고양이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고, 가능하면 함께 다니는 수컷 고양이까지 포획해 중성화수술(TNR)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암컷 고양이는 임신 중이었다. 더구나 ‘터키시앙고라’라는 이른바 품종묘였다. 애교가 많아 아무래도 집에서 길렀던 게 아닌가 싶었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수컷 고양이는 수술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암컷 고양이었다. 수의사, 동물보호단체 전문가들은 “출산을 해도 집고양이 출신 암컷과 새끼들의 생존율은 낮다. 수술을 한 후 어미 고양이는 입양을 보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수술을 마친 수컷은 방사 이후에도 후배의 밥을 먹으러 들렀고, 어미 고양이 역시 새 가정을 찾았다.

고양이 부부는 헤어졌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TNR이라는 게 보통 정성으로 되는 것은 아니구나 느꼈다.

사람들은 길고양이들이 매우 사납고 사람을 경계한다고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에게 시달린 결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인 것 같다. 밥을 챙겨주는 캣맘, 캣대디에게는 목소리만 듣고도 달려오며 벌러덩 누워 뒹굴뒹굴 구르기도 하고 쥐를 잡아 고이 선물 하기도 한다.

길고양이의 매력에 빠진 이들은 캣맘, 캣대디가 되지만 정작 TNR까지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필요성을 몰라서일 수도 있고, 또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밥만 주는 것은 오히려 못 본 척 지나친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고양이를 예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만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심코 밥만 챙겨준다면 주변에 몰려든다는 이유로 고양이가 오히려 사람의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다. 실제 서울 마포 일대에 길고양이들이 독극물을 먹고 잇따라 희생됐다. 더욱이 해당 지역에 고양이 수가 늘어난다면 그만큼 생존 경쟁은 치열해지고 결국 도태된 고양이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복잡한 과정이 없어도 길고양이들은 로드킬, 추위, 배고픔 등으로 평균 2, 3년밖에 못살고 죽는다.

길고양이나 집고양이나 ‘그냥 놔두는 것, 자연스러운 게 좋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일본의 러시아어 동시통역가 요네하라 마리가 쓴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에는 고양이 중성화 수술에 대한 대화가 나온다. “좀 가여운데요, 조금은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고 할까…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요네하라) “암수가 1년에 2, 3차례, 4~6마리씩 낳겠죠. 태어난 새끼들이 또 낳으면 1년 후에는 대략 64마리 정도 될까요. 그 정도 키울 각오가 있으면 전혀 말리지 않습니다.”(수의사)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었다. 길고양이들의 발정기도 본격 시작된다. 더 지나 겨울이 오면 길고양이들은 마실 물도 얼어버리고 추위도 견뎌야 하는 시련의 시간을 맞는다. 주변에 밥 챙겨주는 길고양이들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TNR에 참여하면 어떨까.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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