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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김조광수가 이성애를 반대하진 않는다

입력
2017.04.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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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국방안보 분야 1,000인인 지지선언에 참석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든 시위자가 접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국방안보 분야 1,000인인 지지선언에 참석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든 시위자가 접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 정체성은 ‘부산 출신 40대 남성’이다. 이 인구사회학적 기본 데이터만 해도 대충 견적(?)이 뽑아진다. ‘개저씨’(개념 없는 아저씨란 뜻의 신조어)가 아닌 것처럼 비쳐지고 싶은데 결국은 개저씨의 블랙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는, 나름대로 불쌍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저 그런, 아마 그쯤 될 게다.

정체성 문제는 어릴 적부터 봐왔다. 가장 먼저 와 닿은 건 여자들의 체계적 탈락. 그 때만 해도 딸들이 주렁주렁 달린 집안에서 막둥이 아들의 대학 행을 보장하기 위해 아무리 똑 소리 나게 공부 잘해도 딸들은 무조건 여상으로 보내졌다. 대학 가고 싶은 욕심에 부모 몰래 여고에 원서를 냈다 합격통보와 함께 들통나 난리법석이 벌어지는 집들도 제법 많았다. 그 가운데 몇은 울고불고 빌어 여고엘 가기도 했고, 몇몇은 눈물을 삼키며 여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로선 요즘 화제라는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인기가 반가우면서도 좀 어리둥절하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겪어야 하는 차별을 진짜 몰랐나 싶어서다.

남자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여자들이 1차 탈락자라면, 집안 형편과 아들간 서열에 따라 남자들도 체계적 탈락을 겪어야 한다. 그렇다 해도 대개는 서울 대신, 자기가 사는 지역 국립대나 전문대라도 낙찰 받는다. 그래도 아들이니까. 그 때문에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니는 남자 아이들이 반드시 공부를 잘했다거나, 미래가 더 기대되는 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체계적 배제 이후의 얘기일 뿐이다. 난 나보다 더 똑똑했지만, 서울의 대학에 오지 못한 친구 녀석들 명단을 지금도 줄줄 읊을 수 있다.

내가 무슨 금수저 출신인 건 아니다. 그렇다고 흙수저라고, 고생 꽤나 했다고 떠벌리지는 않는다. 아무리 흙수저라도 체계적 배제는 뚫어낸 셈이니, 감사할 일이지 불평할 일은 아니다. 어렴풋하게나마 짐작만 하던 이 사실이, 명백하게 각인된 건 군대 훈련소에서다. 논산훈련소 연병장에 모여 어벙한 군인 흉내 내기 바빴던, 그 수천의 훈련병 가운데 ‘서울의 4년제 대학생’은 몇 명 되질 않았다. 그 나이에 이미 장사 수완이 좋아 억대 돈을 만지는 놈, 일이 잘 안 풀려 공사판을 전전하는 녀석, 정말 별의별 아이들이 다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고서도 그랬다. 그 때까지 4년제 대학 진학 예비군에 속한 녀석들과 부대끼면서, 세상 모든 내 또래 아이들이 다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게다. 참기 힘들었던 건 “재수없는 냄새가 솔솔 나는 XX”라는 식으로 덮어 놓고 욕하고 괴롭히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억울하단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정체성이란 그런 거다. 권장한다고 증진되는 것도 아니고 비판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 그저 ‘갑’일 땐 잘 모르다 ‘을’로 난도질 당하는 순간 번쩍 깨닫게 되는 것.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비토 발언이 논란인가 보다. 이명박정부 실패 때는 ‘진보 바람’이 불면서 박근혜ㆍ문재인 후보 모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더니, 박근혜정부의 파탄을 두고서는 오히려 ‘보수 역풍’을 우려해 이리저리 눈치 보느라 전전긍긍인 모양이다.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한 반대로 한정 짓는 것도 궁색하긴 매한가지다. 이성애자라 해도 여러 상황, 조건을 외면하고 행동하다가는 망신당하고 쇠고랑 찬다. 동성애자에게도 같은 기준으로 적용하면 그 뿐이다.

2013년 공개적으로 동성결혼식을 올리고, 동성혼의 법적 인정을 위해 싸우고 있는 영화감독 김조광수는 문 후보 발언 논란을 지켜보다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써뒀다. “저도 이성애자들이 100% 이해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죠.” 라이프 스타일은 이해력을 키울 일이지, 반대할 건 아닌 것 같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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