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사는 건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스파 브랜드에서 옷을 사는 행위와는 다른 부담이 존재한다. 가격부터 비싼 재화이거니와 자칫하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권하는 원칙은 이렇다. 초보자는 ‘새차 같은 중고차’를 타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직후에 이르면 처음부터 함께 추억을 쌓는 새차를 타라고. 그러다 차를 아는 정도를 넘어 고수 반열에 오르면 무조건 가치가 뛰어난 중고차를 찾기 마련이다. 자동차를 깊게 알게 될수록 클래식에 눈을 뜨게 되니까, 그리고 시간이 자연스레 만들어내는 희소성은 곧 가치의 상승을 부르기 마련이다. 운이 좋아 좋은 차를 가져온다면 오히려 돈이 남는 거래의 묘미 또한 즐길 수 있다.
최근 동분서주한 일이 있었다. 한국일보 모클팀의 경주차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것. 박혜연 기자가 참가하는 원메이크 레이스에 나갈 차다. 사실 경주차로 새차를 살까 중고차를 살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새라도 망가질 수 있는 경주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경주에 새차는 사실 사치다. 목표는 다들 알다시피 쉐보레 아베오였고 점찍은 차도 있었다. 이미 한번 등록됐기 때문에 취득세가 저렴한 부분. 세금을 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절세를 위한(탈세가 아닌) 최고의 테크닉이 바로 중고차다.
반면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걸 기록하는 롱텀 기사를 위해서는 새차가 우선이다. 차를 구매하고, 직접 출고장을 찾으며 직접 자동차를 가져오는 일련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대부분 탁송을 쓰지만 공장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내 차를 직접 보고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여기서 힌트를 하나 드리자면 임시번호판을 받은 후에도 1주일 가량 운전하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라.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자동차를 반납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중고차] 부산으로 향했다. 차종은 쉐보레 스파크다. 애초부터 아베오 원메이크에 내보내려고 했던 건 팀장의 욕심이었다. 차근차근 가볍게, 하지만 제대로 운전 기술을 쌓을 수 있는 경차전이 수동 초보에게는 훨씬 맞겠다는 판단(사고가 나더라도 경미할 거라는)이 섰다. 그래서 구매한 건 다름 아닌 수동 스파크 ‘깡통’! 새차로 샀다면 992만원인 차가 중고차가 되자 690만원이었다. 출고된 지 반년된 주행거리 7077㎞에 불과한 차였다. 무사고에 모든 게 깨끗했다. 아쉬운 건 색상인데, 경주차는 결국 눈에 띄는 게 가장 좋기 때문. 빨간색, 형광색, 노란색 다 좋은데 정작 눈독 들이는 차는 짙은 회색이다. “그래, 어차피 한국일보 모클팀 로고를 붙일 거니까 옆면을 래핑하면 그만이지.”
#2[새차] 창원으로 향했다. 차종은 쉐보레 스파크다. 다른 용도로 쓸 차였고, 실제 새차를 구매한 뒤 인도받는 과정을 취재하기로 했다. 적당한 옵션에 운전이 편한 C-테크 트림을 골랐다. 솔직히 싱글클러치가 무척 궁금했으나 변속이 자연스럽지 못할 거라 지레짐작하고 탈락시켰다. 연비는 거기서 거기일 테니 차라리 무단변속의 편안함을 우선하고 싶었으니까. 가격은 1,369만원. 옵션 적당히 넣고 필요한 것만 신청했는데도 경차치고는 비싸다. 컬러는 블랙을 뽑았다. 차돌처럼 단단하게 생긴 스파크에 새까만 느낌이 무척 괜찮았기 때문이다.
#1-2 여행의 시작이다. 부산으로 가는 길은 KTX를 이용했다.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역에서 출발했는데, 멀리 갈 필요가 있나? 부산역에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부전 차량등록사업소로 향했다. 거기서 중고차 판매자를 만나기로 했다. 장거리 여행에서는 서로 피곤하지 않게 차량등록사업소에서 보는 게 제일이다. 몇 차례 전화통화를 해보니 신뢰감이 드는 사람이었다. 소위 ‘부산 싸나이’의 화끈함이 있었다. 이거 보고 저거 보면서 재는 기질 자체가 없는 사람이다. 중고차만 수백 대를 바꿔가며 자동차 라이프를 즐겼던 나는 이미 중고 거래에 관한 준 전문가다.
#2-2 여행의 시작이다. 쉐보레 창원 공장은 처음 가보는 곳이다. 오전 일찍 비행기를 타고 내려갈 계획을 세웠다. 점심 전에 ‘쓱’ 날아가서 차를 일찍 받은 뒤 길들이기 삼아 느긋하게 귀경할 심산이었다. 돌이켜보니 다른 메이커들은 새차도 여러 번 구입했는데, 쉐보레는 희한하게도 새차를 사본 적이 없다. 그래서 창원 가는 길이 더 새로웠는지도 모르겠다. 부산공항에서 창원 공장까지는 직행하는 리무진이 있었고 게다가 내가 도착하니 마침 정류소에 정차 중이었다. 술술 풀리는 듯하다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 분명 기사 분의 안내를 받아 하차했는데, 버스 정류장이 그 거대한 공장 입구와는 완전 반대편이다. 무려 3㎞를 터벅터벅 걸었다.
#1-3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독특하게 부전 차량등록사업소는 독특하게도 지하철 역사 안에 있었다. 두 분이 나왔고 계좌이체를 통해 현금을 보내고 끝났다. 참, 보험은 전날 미리 가입하는 게 좋다. 인터넷 견적으로 알아보니 다이렉트 보험사의 금액이 가장 저렴했다. 자차를 뺄까 생각했지만 서울과 인제를 오가는 코스를 생각해보니 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차값이 저렴해서 자차 금액이 그리 높지도 않았으니까.
#2-3 드디어 쉐보레 인도장에 도착했다. 단층 사무실이 무척 컸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사무직원들이 반겨준다. 너른 사무실에 비해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마침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가버려 충전을 부탁하고 20분 정도 기다리니 인수를 맡은 직원이 날 찾아왔다. 그를 따라 바깥에 나가니 새까맣고 귀여운 스파크가 주차되어 있었다. “호오, 우리 한 번 잘해보자. 귀여운 녀석 같으니!” 자동차를 의인화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사실 그런 기질이 없다면 굳이 창원에 있는 인도장까지 직접 갈 이유는 없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사랑스러운 우리집 개가 귀여운 강아지를 낳는 걸 목도하는 기분이랄까?
#1-4 부산에서 출발했다. 20년 전 부산을 처음 찾은 이래 종종 내려가는 터라 어지간한 지명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출발한 부전동은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해운대나 광안리 정도, 혹은 가장 좋아하는 송정만 들렀을 뿐이다. 낯선 고속도로에 진입해 차를 몰았다. 그런데 “오호라” 수동변속기를 단 스파크의 질감이 좋다. “통통, 스윽, 보옹”의 의성어로 표현한다면 아실 게다. 운전 재미가 쏠쏠하다. 살짝 의뭉스러운 변속 감각조차 일상 주행에서는 편하게 다가온다.
#2-4 창원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독한 새차 냄새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새차의 가장 큰 단점이다. 물론 ‘럭셔리’ 브랜드의 고급차를 사는 건 예외다. 친환경 자재를 쓰는 등 내장재 등급이 높은데다 포름알데히드 같은 화학 성분을 제거한 뒤 출고하기 때문이다. 볼보나 메르세데스-벤츠의 고급차 등이 그러한 표본이다. 하지만 난 국산차의 가장 엔트리 모델을 타고 있다. 게다가 창문을 활짝 열자니 미세먼지가 날 괴롭히고 창문을 꼭꼭 잠그고 타자니 골치가 아프며 속도를 제대로 낼 수도 없다. 완벽한 딜레마에 빠져든다.
#1-5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엔진오일을 점검하니 아직 쓸만하다. 육안으로 보기에 전차주가 한 번 정도 오일을 교환한 느낌이다. 기름을 가득 채운 뒤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전력 질주를 준비한다. 중고차의 장점이다. 길들이기 따위는 필요 없다. 그냥 냅다 달리면 그뿐이다. 경차는 수동을 달아야 엔진 성능을 제대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스파크 수동 역시 쏠쏠한 운전재미를 품었다. 둔탁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으니까.
#2-5 국도와 고속도로를 오가며 신중하게 발끝 조절을 한다. 길들이는 간단하다. 엔진과 변속기에 무리 가지 않도록 매끈하게 오르내리면 그뿐이다. 급가속과 급제동, 그러니까 소위 ‘급’이 들어가는 운전만 지양하면 된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건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특정 엔진 회전수를 지속하며 달리는 것보다는 각 단을 고루 쓰며 부드럽게 엔진을 돌리는 것이 좋다. 스스로의 경험치를 참고 삼아 천천히 서울로 올라간다. 고등학생 때 배웠던 중국어 단어가 생각나네. “만만디(慢慢地) 만만디! 어우, 몸에서 사리 나오겠네…”
#1-6 중고 스파크로 서울까지 올라오는 시간은 대략 4시간 남짓으로 금새였다. 서울에 진입하니 퇴근 시간과 맞물려 살짝 피곤이 몰려왔지만 정체되는 구간에서도 수동변속기 때문에 힘든 건 없다. 그게 다 두루뭉술한 감각 덕분이다. 개인적으로 짝 맞물리는 클러치 느낌을 좋아하지만 스파크의 편안한 감각은 일상적인 용도로 쓰기에 한결 편하다. 다만 살짝 걱정이 앞선다. 이 차로 경주를 하는 게 정말 재미있을까? 물론 내가 탈 게 아니니 굳이 그런 생각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2-6 새 스파크로 서울까지 올라오는 시간은 대략 8시간 남짓. 피곤했다. 서울에 진입하니 한밤중이다. 마지막으로 천호동 인근 고수부지에서 잠깐 쉬었다. 피곤한 나는 음료를 마신다. 무단변속기가 살짝 열 받았을 테니 잠시 쉬어가자는 의미. 친한 엔지니어와 전화 통화를 했다. 내 운전 성향을 잘 아는 그의 웃음에 나도 따라 웃는다. 그게 뭐 나쁘지만은 않다. 자동차에 미쳤던 시절이었다면 무단변속기를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했을 거다. 남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편협한 쪽에 가까웠을 테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모든 선택은 상대적인 가치가 있다는 걸 잘 안다. 자동차를 판단하는 기준도 그렇고.
#1-7 정리해본다. 한국일보 모클 경주차로 쓸 차는 새차 같은 중고차다. 분명 출력 약한 경차전에서는 스타트 기술에 따른 변별력과 코너에서의 푸싱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리라 본다. 찌그러지고 부서지더라도 도전하고 승부를 불태우는 과정에서 분명 근사한 경험이 쌓여나가겠지. 분명 아마추어 경주는 해보고 싶은데 부담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중고 스파크의 변신 스토리는 박기자의 모터스포츠 롱텀 기사를 통해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응원 부탁 드린다.
#2-7 정리해본다. 스파크 새차는 분명 잘 달릴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차 증후군도 점점 옅어질 거고 밀리는 도심에서의 주행은 한결 편안할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릴 일은 거의 없을 테니 서울 도심의 자동차 전용도로 정도는 무난하게 달릴 수 있겠지. 덩치 큰 SUV나 버스가 밀고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큰 스트레스 또한 없을 것 같다. 일단 해치도어에 ‘왕초보’를 커다랗게 붙이고 느긋하게 다닐 생각이다. 앞으로 롱텀 기사를 통해 유지비를 비롯해 경차 매력을 전해드릴 생각이다.
자동차를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여기는 독일인들은 신차를 받으러 찾아가곤 한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은 고객들은 아우토슈타트에서 가족의 한 구성원을 맞이하듯이 차량을 인도받는다. 쿤덴 센터(Kunden Center/Car Distribution Center)와 자동 컨베이어 터널을 통해 연결된 48m에 달하는 유리 자동차 타워에는 400대에 달하는 신차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차량을 인도 받을 고객이 쿤덴센터에 도착하면 유리 자동차 타워 안에서 차량이 자동으로 인도 장소로 이동해온다.
고객은 차량에 번호판을 직접 부착하고, 차량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고, 기념 사진도 촬영하는 등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차량을 구입하는 약 1/3의 고객들이 바로 여기서 차량을 인도받고 있다.
뜬금 없이 왜 폭스바겐 신차 인도장을 소개하느냐고? 우리나라도 가족들이 손잡고 방문해 새로운 식구(?)를 기분 좋게 맞이하는 문화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자동차는 문화이며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점점 근사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모클팀 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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