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계간지 역사비평이 여름호에서 이른바 재야사학계를 비판하는 논문 3편을 또 실었다. 지난 봄호에서 낙랑 위치 문제, 식민사학 등을 둘러싼 재야 연구자들의 그간 주장을 정색하고 비판한 데 이은 것이다.
역사비평 여름 호에는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을 주제로 이정빈 경희대 연구교수, 강진원 서울대 강사와 연세대 박사과정인 신가영씨의 글을 게재했다.
이정빈 연구교수는 ‘한사군, 과연 난하 유역에 있었을까’에서 낙랑군이 현재 중국 허베이(河北)성 난하 유역에 있었다는 재야의 주장은 사료를 왜곡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후대 문헌에서 낙랑군 또는 관련 지명이 난하 유역에 보인다고 해서 이를 한사군과 직접 연관해 보기는 어렵다”며 “각종 출토 문자자료, 고고자료가 축적되면서 낙랑군이 대동강 유역에 소재했음이 한층 분명해졌고 결코 역사학계 다수가 식민주의 역사학을 추종해 그리 본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사료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정서를 지리적 신체(geo-body) 개념으로 설명했다. 국민국가의 영토에 대한 믿음이 깨질 때 신체 일부가 잘려나간 듯한 불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넓은 국토를 지닌 군사적 강대국, 다시 말해 위대한 고대사를 말해야 비로소 식민주의 역사학에서 탈피한다는 강고한 믿음이 오히려 식민주의 역사학의 사유”라며 “‘대륙 지향의 민족사관’이 일제강점기 황국사관과 흡사하다는 지적이 새삼 주의를 요한다”고 꼬집었다.
강진원 강사도 ‘식민주의 역사학과 ‘우리’ 안의 타율성론’에서 최근 고대사 논의가 식민주의 역사학의 이론적 방법인 ‘만선사관’과 ‘반도적 성격론’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물었다. 그는 일반 시민들도 “만주의 ‘고토’를 회복하지 않는 이상 한국은 강대국이 되기 어렵다”거나 “만주를 영유하고 있을 때가 전성기였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걸 보면 만선사관이 우리 사회에서 말끔히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정세나 안보를 얘기할 때 “지속적인 외세의 위협에 노출되는 반도라는 지정학적 조건”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 반도” 같은 표현은 반도적 성격론의 잔재라며 “속성을 정해놓고 무수한 인과관계를 단순화하고 그것이 지속함을 역설한 만선사관이나 반도적 성격론은 일종의 ‘프로파간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넓은 영토에 대한 집착’ ‘당면한 현실에 부응하기 위한 학문 연구’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가영씨는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가 일본 극우파 시각에 동조했다고 주장하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을 두고 “김현구의 연구에서 왜의 지배를 인정하는 서술은 어디에서도 살펴볼 수 없다”며 “사이비 역사가들이 김현구의 임나일본부 연구를 식민주의 역사관에 따른 것으로 파악하는 자체가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이해가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구들을 정확하게 소개하지도 않은 채 실상을 왜곡하는 것은 선입견 혹은 공명심에 사로잡혀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며 “결코 학술적인 범주의 ‘연구’라고 지칭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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