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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선거공약 검증 독립기구 만들자

입력
2016.06.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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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신공항 추진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났지만 아직도 온 나라는 그 후유증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권이 지난 10년간 대선 공약으로 이용하면서 최악의 국론분열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선 후보들이 행정수도 이전, 대운하사업, 영남권 신공항 등을 약속했지만 누구도 실현 가능성과 소요 예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이러한 대형 국책사업은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국론분열은 물론 세금폭탄까지 예상할 수 있지만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점점 수렁 속에 빠지게 된 것이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 소위 포퓰리즘 복지사업과 개발 국책사업을 무더기로 쏟아낸다. 일단 선거에서 승리하고 보자는 심리 때문이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엄밀한 타당성 분석 없이 경쟁적으로 공약을 남발한다. 이에 현혹된 유권자들은 기대를 하게 되고 선거 후에는 공약을 지킬 것을 압박한다. 이러한 악순환을 통해 지역 이기주의는 증폭되고 국가재정은 악화하며 공약이행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에 대한 불신은 가중된다.

묻지마 선거공약으로 국론분열은 물론 국가재정이 파탄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몇 가지 법적ㆍ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선거공약 검증 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이 기구가 공약이행에 필요한 소요 예산 및 재원 조달 방안을 선거전ㆍ후에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공약이 발표되면 바로 검증을 시작해 선거가 끝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이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당선자도 무리한 공약파기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둘째, 일정 금액 이상이 필요한 선거공약을 감시하는 공직선거법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공약 개발이 정당 고유의 활동 영역이긴 하지만 무책임한 대형 선심성 공약을 남발해 발생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규제가 불가피하다.

셋째,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기획재정부, 국회예산정책처, 국회입법조사처 등 정부 부처 및 국책연구기관의 공약과 관련된 소요 예산 정보 제공과 분석을 자유롭게 허용해야 한다. 선거 이전에는 기존에 분석된 관련 정보만 제공하더라도 유권자들이 묻지마 공약을 걸러내는 데 효과적인 근거가 될 것이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기획재정부가 복지공약을 분석해 향후 5년간 268조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경고 조치를 받았다. 대형 국책사업 공약의 비교 평가에는 공무원 선거 중립 의무와 서열화 금지 규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공직선거법 제66조를 개정해야 한다. 현행 규정은 대통령, 자치단체장과 달리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은 공약 추진계획, 절차, 시기, 재원 조달 방안을 담은 선거공약서를 작성할 의무가 없다. 그러다 보니 정당이 후보공천을 늦게 하더라도 부담이 없고 국회의원 후보자는 큰 예산이 필요한 개발공약을 가볍게 생각한다. 국회의원도 재정 계획을 담은 공약작성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도록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다섯째, 선거공약을 사후 통제하는 방법으로 ‘페이고(PAY-GO)’ 재정준칙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는 국회의원과 정부가 의무지출 관련 법안 발의 시 재정 확보방안을 의무적으로 첨부하는 것이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약 보름간 발의된 225개 법안 중 비용 추계서가 첨부된 법안은 6.6%인 15건에 불과했다. ‘페이고’ 방식은 당선 후 공약이행 과정에서 다시 한 번 부실공약을 걸러낼 수 있는 좋은 여과 장치가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선거공약 검증을 위한 중립적인 독립기구를 만들어 날로 악화하는 국가재정 낭비를 막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국론분열을 차단해야 한다. 불가피한 공약 불이행은 잘못된 공약이행보다 사회적 피해를 줄이는 현명한 선택이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ㆍ미래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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