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협, 5월에 '학점제 완화' 선언 법무부와 상의 없이 평가 방식 바꿔
기존의 '엄격한 상대평가 학점제'는 정원의 75% 변호사 시험 합격 조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들의 ‘학점 퍼주기’가 도를 넘어섰다. 일부 학교가 학점기준을 완화하자 위기를 느낀 다른 학교들이 아예 퍼주기 담합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점을 잘 줘 취업에 도움을 주겠다는 고육지책인데, 변호사들의 수준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전국 25개 로스쿨이 모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로스쿨협의회)는 5월 총회에서 2학기부터 ‘엄격한 상대평가 학점제’ 완화에 합의한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엄격한 상대평가 학점제는 상위 25%까지 A, 이후 50%는 B, 21%는 C, 4%는 D학점을 주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이는 전체 로스쿨 입학정원(2,000명)의 75%까지 변호사 시험에 합격시키는 조건으로 2010년 로스쿨협의회가 법무부와 합의한 사항이다.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너무 높아 변호사 수준 하락이 우려된다는 비판에 대해 로스쿨이 다양한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이 약속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울대 로스쿨이 돌연 ‘학점제 완화’를 선언하고 교수 재량권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 서울대는 선택과목의 경우 A학점 비율을 35%까지 10%포인트 확대하고 D학점을 교수 재량에 따라 주지 않을 수 있게 했다.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등 서울 주요 대학 로스쿨도 올해 1학기 학점 평가기준을 이처럼 완화했다. 고려대는 선택과목 중 수강생이 10명이 안 되는 수업은 A학점 비율을 최대 40%까지로 더 늘렸고 나머지 학점은 교수 재량에 맡기기도 했다.
이들 대학들은 “과도한 경쟁으로 실제 실력보다 점수가 낮게 나오는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 “학점을 잘 주지 않는 선택과목이 폐강돼 로스쿨 설립 취지인 다양성을 갖춘 법조인 양성이 어렵게 된 것” 등 이유를 댔다. 그러자 다른 대학들도 “원점에서 학점제를 재검토하겠다”며 으름장을 놨고 결국 학점제 담합까지 벌어진 것이다.
로스쿨들이 학점제 완화에 앞 다퉈 나선 이유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과 취업률 경쟁 때문이다. 한 로스쿨 관계자는 “학교 수업 부담을 줄여 줘 변호사 시험에 집중하게 해 합격률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같은 합격자라도 학점이 높은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되도록 학점을 잘 주자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고 덧붙였다.
로스쿨들은 이렇게 평가방식을 바꾸면서도 관계 부처와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았다. 법무부와 교육부 관계자는 학점제 완화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최진녕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법무부가 변호사 시험 합격률 75%를 보장했던 것은 교육을 철저하게 하라는 학사관리의 엄격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그 전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므로 법무부, 교육부와 협의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는 변호사의 질 추락을 우려하고 있다. 유정표 서울변호사회 사무총장은 “다양한 교육을 통한 변호사 양성이라는 로스쿨의 목적을 스스로 부인한 꼴”이라며 “부실한 학사관리로 변호사의 수준이 떨어지면 결국 법률 소비자인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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