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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른의 덕목.. 시대변화 이끈 통찰과 불의에 맞선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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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른의 덕목.. 시대변화 이끈 통찰과 불의에 맞선 저항

입력
2016.02.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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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갈구하는 마음이 사회적으로 크다면 그것은 다른 말로 시대가 어렵고 개인의 삶이 고달프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그럴수록 세상에는 호통만이 유일한 무기인 듯한 가부장적인 생물학적 어른뿐 아니라, 나이 들되 깨우치고 성찰하고 저항하고 베풀고 타인과 호흡할 줄 아는 사회적 어른이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진다.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는 현재의 불안, 다가올 노추(老醜)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려는 심리적 작용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회적 가치가 불분명해질수록 ‘어른’을 찾는 눈길이 절실해진다. 어른에 대한 갈증은 희망에 대한 갈구요, 거기서 찾으려는 덕목은 절박한 시대적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한국일보 설문조사에서 지식인 사회는 무엇보다 ‘시대 변화의 촉발’을 목말라했다. 설문조사 중 어른의 덕목을 묻는 객관식 문항(복수선택 가능)에서 응답자 총 68명 중 49명(72.1%)이 ‘시대 변화를 촉발한 탁월한 성취 및 지성과 통찰’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불의에 맞서 싸운 비판과 저항정신(61.8%), 반대자와 약자에 대한 관용과 베풂(45.6%),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는 고매한 인격(44.1%), 당대와 호흡하는 유연한 사고(44.1%)가 뒤를 이었다.

시대 변화 이끈 지성과 통찰 큰 덕목

시대 변화를 촉발한 탁월한 성취 및 지성과 통찰을 선보인 대표적 어른은 김수환 추기경 등이 거론됐다. 김 추기경을 꼽은 응답자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약자 배려의 가치를 설파, 실천”하고 “민주화와 인권수호를 위해 거리낌 없이 앞장선” 모습을 그리워했다.

어른의 덕목으로 ‘민주화와 사상의 구축’이 다수 언급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김대중 전 대통령(“민주화와 남북화해를 글과 몸으로 실천”), 김영삼 전 대통령(“민주화를 위해 헌신”), 노무현 전 대통령(“민주화에 기여,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대통령상을 재정립”)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민족통일을 시대 정신으로 남긴 분”(김구 선생), “정신적 현대를 이룩한 자유의 화신”(김수영 시인), “한국적 특수성과 민중적 보편성을 아우르는 한국 사상의 구축”(함석헌 선생), “인간 자세에 대한 깊은 사색과 실천, 가르침”(신영복 교수), “사소한 것들에 눈길을 주는, 큰 문학의 울림”(소설가 박완서) 등 지적 성취와 통찰에 대한 언급도 눈에 띄었다.

생존 인물 가운데 시대 변화를 촉구한 성취, 통찰을 이유로 어른에 꼽힌 이들로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인문학의 본질, 역할을 보여주는 인문주의자” “한 눈 팔지 않은 진정한 학자” “균형 있는 깊은 성찰”) ▦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여성운동, 통일운동, 생명운동을 아우르는 이론화 작업과 낮은 곳에서의 끊임없는 실천”) ▦신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여성철학자들의 학문적 연대 시작하고, 한국 페미니즘의 이론적 성장 이끌어”)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작가로서의 성취와 젊은 세대와의 소통”) 등 학자가 많았다. 또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민주화운동 지원, 자기세대에 대한 비판적 반성 독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지성과 용기를 겸비한 지식인. 보수적 신앙과 합리적 세계관의 조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끝없이 대안을 모색하는 실천적, 공적 지식인”) 등도 이런 덕목을 갖춘 ‘어른’으로 거론됐다.

불의에 저항, 탈권위, 개방성도 중요

‘불의에 맞서 싸운 비판과 저항정신’ 역시 ‘어른’의 중요한 키워드다. ▦이소선 여사(“한국 노동운동의 정신적 지주” “권력자에 짓밟혀 더 이상 하소연 할 곳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실질적 언덕”) ▦박영숙 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반독재투쟁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 ▦리영희 선생(“냉전, 분단, 독재와 싸운 저항정신”) ▦장준하 선생(“민주주의와 항일운동의 상징”) 등이 이런 경우다. 생존 인물 중에서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독재에 맞서고 민중운동 선두에서 투쟁”)이 이 범주에 포함됐다.

어른의 개념 자체가 권위ㆍ위계와 무관할 수 없으나 약자의 편에 서고,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는 모습, 당대와 호흡하는 유연한 사고 등 스스로 탈권위, 탈물질, 탈위계를 추구하는 모습을 어른의 덕목이라고 한 응답자도 적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 성철 스님, 법정 스님, 권정생 아동문학가 등이 소박한 삶의 현장에서 약자와 함께 진실한 삶을 살아낸 어른들로 꼽혔다. 조영래 변호사(“끝까지 약자의 편에서 헌법정신을 수호한 진정한 법조인”), 유일한 박사(“자본의 공공성을 보여준 어른”) 등도 약자와 함께 한 모습으로 기억됐다. 문인들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 김정환 시인을 마음 속 어른으로 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더 날카로워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더 넓어진” 유연하고 개방적인 어른으로 생각했다.

한 응답자는 “‘어른성’이란 성숙한 인간이 삶을 통해 종내 이루어내는 정신적, 심리적 가치이므로 가치보다 물질이 우선하는 사회에서 ‘어른성’을 가진 나이든 사람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주인이 자본 대신 사람이 돼 간다면, 자연스레 어른의 덕목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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