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농약,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가족농으로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냐고요? 저도 자연생태농업으로 먹고살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시도한 게 아닙니다. 귀농을 택한 것도 남들과 조금 달라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공존하는 삶을 꿈꿨기 때문에 시작한 겁니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전북 완주를 거쳐 장수에서 22년째 자연 재배 농사를 짓고 있는 전희식(58) 귀농정책연구소 부소장에게 소농은 농사의 방식이 아니라, 삶의 방식 또는 삶의 철학이다. 한국농어민신문, 녹색평론 등에 기고한 글과 강연 등을 묶어 최근 펴낸 책 제목도 ‘소농은 혁명이다’다. 소농의 사전적 의미는 ‘작은 규모로 짓는 농사’지만 그는 이 책에서 소농이 농사 규모라기보다 농사법에 가깝고 농사법이라기보다는 “삶 전체의 개벽을 암시한다”고 설명한다.
소농이 어떻게 혁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전 부소장과 최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소농은 철 따라 씨앗을 뿌리고 핵에너지나 석유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 몸에너지, 자연에너지, 가축에너지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농사법입니다. 머지않아 인류가 맞게 될 지구적 환경 위기에서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 곳은 농촌과 산촌이에요.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선 밥과 물, 공기가 필수적이잖아요.”
전 부소장은 ‘소농은 혁명이다’에서 농사를 지어야 할 땅과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어떻게 오염돼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유전자변형농산물을 가공해 만든 음식, 비닐하우스에서 질소화학비료로 만든 채소, 항생제를 먹여 키운 가축…. 기업형 대규모 농업ㆍ축산업은 땅을 오염시키고 사람의 몸도 오염시킨다. 전방위적 오염물질의 공격에 인류가 맞설 수 있는 무기가 소농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전 부소장은 “땅이 살고 우리의 먹을거리가 살지 않으면 사람이 죽는다”고 했다.
전 부소장에게 소농은 자연을 대하는 철학이다. 그에겐 인간의 복지만큼 땅과 동물, 식물의 복지가 중요하다. 농민운동도 장기적으로 농지복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질소와 질산염에 중독된는 땅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 자연재배 또는 유기재배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고 식물과 땅을 학대, 고문하고 있다”며 “그렇게 재배한 음식을 먹는 사람의 심성과 건강이 망가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땅의 복지를 위해 그는 “공기나 물, 하늘을 사유화할 수 없는 것처럼 농지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부소장에게 소농은 대안적 삶의 실천이다. 자연에서 빌려 쓰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삶, 먹을거리부터 입을 거리, 교육, 노동력, 문화 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자급의 삶, 공동체적 삶을 실천하는 것이 소농이다. 그래서 그는 정부의 농업정책이 농부들을 돈벌이 농사로 내몰아 농업 내 소득 격차 벌리기에 앞장선다며 강하게 비판한다. 농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제안하는 것은 ‘농민기본소득제’다. 모든 농민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도다. 그는 농민기본소득제가 “복지제도가 아니라 농민들의 생활 안정성을 높이고 시장 구매력을 증대시키는 제도”라며 “이 제도가 시행되면 자연농법과 농촌인구 증가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부소장에게 다시 물었다. 기계와 농약, 비료를 쓰지 않고 한 가족이 할 수 있을 만큼만 소규모로 농사를 지어 모든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냐고. “자연생태농업을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 병원에 갈 일이 없습니다.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보호받고 배려받는 느낌은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학교에 보내는 것도 큰 의미가 없어지더군요. 삶의 지혜를 자식에게 전수하는 게 중요하죠. 대안학교에 보내고 홈스쿨링으로 교육했기 때문에 교육비도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재배한 농산물이 기존 농산물보다 몇 배 이상 비싸게 팔리기 때문에 먹고 사는 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절대 산술적인 수치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에요.”
전 부소장은 소농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도시에서 살든 농촌에서 살든 “자신의 일상이 자기를 격려하고 고무하고 지지하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삶의 새로운 대안이 농촌에 있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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