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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구 기자

등록 : 2017.09.25 10:39
수정 : 2017.09.25 14:21

[단독] 일본인 관광객이 흘린 2000만원 찾아준 택시기사

등록 : 2017.09.25 10:39
수정 : 2017.09.25 14:21

술김에 택시에 돈가방 놓고 내려

게티이미지

“저기, 손님이 이걸 두고 가셨는데요.” 24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중부경찰서 로비에서 당직을 서던 경찰관에게 택시기사 김영태(54)씨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손엔 흰색 천 가방 하나가 들려 있었다. 경찰관 앞에서 연 가방 안에는 1만엔 권 217장(한화 2,200만원)과 함께 일본 여권과 옷가지가 담겨 있었다. 경찰은 “이렇게 큰 액수는 처음 본다”며 놀랐다.

그가 돈가방을 들고 경찰서를 찾은 사연은 이렇다. 김씨는 23일 오후 11시 30분쯤 강남구 역삼동에서 손님 4명을 태웠다. “명동 A호텔로 가달라” 주문한 이들은 일본인으로 술에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출발 15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김씨에게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남성은 가방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건넸고, 여전히 흥에 겨운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료 3명과 함께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곧바로 다른 손님을 태워 경기 김포시로 향했다.

손님을 내려준 후 운전대를 잡으려던 김씨에게 눈에 띈 낯선 물건. 바로 일본인 손님이 두고 간 흰색 가방이었다. 가방을 열어본 김씨 눈엔 빳빳한 1만엔 권 뭉치가 보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적지 않은 돈에 욕심이 생길 법도 했지만 김씨 머릿속엔 ‘조금이라도 빨리 손님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6년 간 택시를 운전하며 손님이 두고 내린 돈뭉치를 발견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3년 전 강원도에서 상경한 노부부를 어느 모텔에 내려다 준 뒤 차량을 청소하다 현금 700만원을 찾은 일이 있었다. 그 길로 돈을 돌려주기 위해 모텔을 찾은 김씨에게 노부부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내려와 “전깃불도 안 들어오는 곳에서 3년 간 땀 흘려 모은 돈”이라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그때 기억이 불현듯 스쳤다. 누군가는 간절히 찾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가 명동을 관할하는 중부경찰서로 돈가방을 접수한 지 2시간 만에 일본인 남성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주인은 일본에서 의류 도매업에 종사하는 츠지야 겐타(45)씨. 사업차 동료 7명과 함께 한국을 찾은 그는 총무를 맡아 돈을 보관하다 ‘사고’를 치고 밤잠을 설치던 중이었다. 택시 번호는 기억나지 않았고 택시비도 현금으로 결제한 터라 찾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분실 신고한 명동파출소에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중 ‘돈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큰 돈을 잃어버릴 뻔했던 겐타씨는 김씨에게 허리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겐타씨와 함께 온 한국 거래처 사장 조훈(42)씨는 “겐타씨만 아니라 함께 온 동료 7명 돈이 모두 들어있던 가방이었는데 김씨 덕분에 모두 한숨 돌렸다”고 말했다.

김씨 가정형편은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아내는 구리시 교문동 집 근처에서 도넛을 파는 노점을 하고 있다. 217만엔은 김씨 가족에겐 2, 3년치 수입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내 돈도 아닌데 욕심이 왜 생기겠어요”라며 “평소에 가난하더라도 정직하게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덤덤히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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