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내가 공기 중에 희미하게 남아 떠돌기는 했지만, 환자와 방문객들은 안정을 찾은 듯 다시금 건물 내부를 분주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불이 난 다음 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화재로 인한 비극의 흔적이나 통한의 기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일주일 만에 또다시 발생한 병원 화재. 제대로 작동한 각종 방재설비, 평소 매뉴얼과 훈련으로 다져진 신속한 대피가 두 병원의 명운을 갈라놓았다. 미리 준비하고 대처하면 불행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병원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3일 오전 7시56분 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 건물 우측 5번 게이트 복도 천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인명피해 없이 2시간여 만에 진압됐다. 경찰은 60m 떨어진 3층 식당 피자업소에서 사용한 화덕 불씨가 천정 배기구를 타고 옮겨 붙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이 난 직후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는 7분 만에 3층 복도 화재를 진압한 뒤 구조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 309명이 다른 병동이나 본관 옥상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긴 했지만, 정상 작동된 스프링클러와 구역별 방화셔터가 연기 확산을 막아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안전설비 유무 차이가 컸다. 세브란스병원은 의료법 3조4항에 의거, 일정 수준 이상 인력ㆍ시설ㆍ장비를 갖춘 ‘상급종합병원’으로 스프링클러와 방화벽 설치 의무 대상이다. 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 바닥면적은 12,759㎡로, 소방법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기준(바닥면적 1,000㎡ 이상)에 해당된다. 세브란스병원 스프링클러는 즉시 작동해 불을 끄는데 일조했다. 밀양 세종병원은 층별 바닥면적이 213~355㎡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기에 초기 진압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소방신호와 연동돼 연기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닫히게 되어 있는 구획별 방화셔터 역시 피해를 최소화한 1등 공신이었다. 3층 복도 양쪽 끝에 설치된 방화셔터가 닫히면서 연기 확산을 막았고, 중환자실과 병동이 모여있는 8층으로는 거의 퍼지지 않았다. 4~6층 환자들이 연기를 흡입, 8명이 호흡곤란 증상으로 치료받기는 했으나 다음날인 4일 모두 기존 병실로 돌아가거나 퇴원했다고 병원 측은 밝혔다. 세종병원의 경우 방화셔터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1층을 제외한 2~5층에 설치된 방화문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평소 직원들이 받은 소방교육은 실제 상황에서 신속한 대처로 이어져 추가 피해를 막았다. 세브란스병원은 화재 발생 직후 안내방송을 통해 상황을 알리고, 의료진을 비롯한 직원들은 특별피난계단 등을 통해 환자들 대피를 도왔다. 옥상문은 화재경보와 함께 자동으로 열렸다. 이런 대처는 ‘의료기관인증’을 통한 지속적인 관리 덕분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상급종합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은 4년에 한 번씩 의료기관인증을 받아야 한다. 평가 항목에는 전기설비 안전관리 평가를 비롯해 소방훈련, 화재예방 점검, 직원 소방안전기 교육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세브란스병원은 ‘국제의료기관인증기구(JCI)’ 인증병원이라 더욱 철저한 관리가 가능했다. 병원 관계자는 “JCI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환자의 안전’을 위한 3,000여개 항목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모든 위험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방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반면 세종병원은 최근 3년간 관련 기관 안전점검 대신 병원 안전관리 담당자가 자체점검만 실시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세브란스병원 화재를 통해 밀양 세종병원 역시 안전설비와 제대로 된 대처만 있었다면 사망자 41명을 포함, 사상자 191명이 발생하는 참사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란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제진주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중소병원은 대형병원에 비해 설비 기준이 미비할 수는 있다”면서 “불시 소방점검 등을 통해 유지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k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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