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8월11일 내가 민자당에 입당한 것을 놓고 말이 많았다.총선과 대선 때 그렇게 욕을 해댄 여당에 어떻게 그리 쉽게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그렇게 줏대가 없으니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소리를 듣지”라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일부러 여당에 들어가기 위해 국민당을 탈당한 게 아니냐”고도 했다. 그러나 민자당 입당은 그렇게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진 것도, 여당의 압력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그 사연을 말하겠다.
6월29일 국민당과 신정당이 신민당으로 합당한 지 1개월 정도 지난 뒤의 일이었다. 통합신당의 대표는 김동길(金東吉) 의원이었다.
그의 능숙한 정치인 변신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지만 실망이 더 컸다.
“이봐, 정 의원. 정치는 아무래도 우리 같은 사람이 있을 데가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던 김 대표였다.
그때 국민당 시절 나와 친하게 지낸 김정남(金正男) 의원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변정일(邊精一) 의원도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두 사람 모두 무소속이었다. 김 의원은 대뜸 “같이 민자당에 들어가자”고 말했다.
내가 “1년밖에 안 남았는데 무슨 민자당이에요?”라고 했더니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 의원, 출마 공약을 잊었어? 당신이 지금까지 공약을 제대로 지킨 것이 뭐가 있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의원활동을 2년 넘게 해오면서 구리시에 해준 것이라고는 경춘선 옆 구리초등학교 운동장에 방음벽을 설치한 것밖에 없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한참 생각한 후에 몇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그러면 민자당에 들어가는 대신 구리실내체육관과 구리여고 강당을 지을 수 있게 해달라.”
어차피 1년 정도만 하면 될 의원 생활이니 지역구에 좋은 일이나 한번 하자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옛 국민당 동지 차수명(車秀明) 윤영탁(尹榮卓) 의원과 함께 민자당에 입당했다.
좀 부끄러운 말이지만 여당이 역시 좋긴 좋았다. 민자당에 들어가자마자 구리에 체육관과 강당이 세워진 것이다.
힘 빠진 국민당이나 무소속 의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의원 생활 하려면 여당에서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민자당은 나를 잘못 선택한 꼴이 됐다. 10월 열린 국회 문화체육공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내가 야당의원보다도 더 민자당 의원 출신의 이민섭(李敏燮) 문체부 장관을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장관은 나와 강원도 동향인데다 예전 그의 후원회 행사에는 내가 수없이 참여해온 사이였다.
당시 국감에서는 문체부가 춘천에 경륜 경기장을 세우려는 것을 놓고 정부와 야당의원 사이에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장관은 아마 경륜 경기장을 차기 15대 총선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경륜은 문화관광산업”이라는 이 장관 말에 나는 이렇게 따졌다. “경륜이 노름이지 무슨 문화관광산업이냐? 경기장이 들어서면 춘천은 망한다. 그냥 호반의 도시로 놔두지 왜 일을 벌이느냐?”
당연히 여당에서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책위에서도 나보고 좀 도와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한 의원은 “당신, 미친 거 아냐?”라고도 했다.
그래도 나는 들은 체도 안 했다. 정치를 다시 하겠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국감 발언에 춘천 시민들이 큰 호응을 해줬고, 이 장관은 결국 15대 총선 때 춘천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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