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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좀 꺼내주오, 뼈라도 찾아 유족 되게 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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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좀 꺼내주오, 뼈라도 찾아 유족 되게 해주오"

입력
2015.04.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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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져 준다면 언제까지든 기다릴 것

바다 속 우리 딸, 아들, 남편, 아내

찾고 난 뒤 규명도 보상도 얘기해야"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인 허흥환씨가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세월호 선체 인양을 호소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인 허흥환씨가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에서 세월호 선체 인양을 호소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 있는 내 딸, 아들, 가족을 살려내라며 수백명이 울부짖던 전남 진도군 팽목항. 300여명의 희생자 주검이 하나 둘씩 수습될 때만 해도 자신의 피붙이 얼굴을 이토록 볼 수 없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운 가족을 찾아 여전히 팽목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9명 실종자 가족의 얘기다.

안산 단원고 남현철ㆍ박영인군, 조은화ㆍ허다윤양, 양승진ㆍ고창석 교사,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 이영숙씨. 이들 가족의 삶은 지금도 세월호가 가라앉은 1년 전 4월 16일에 멈춰 있다. 한 줌의 기대는 지난해 11월 정부가 수색 중단을 선언하면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제발 유가족이라도 되게 해달라”는 절규를 귀 담아 듣는 이는 이제 별로 없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소중한 가족이 행여나 잊힐까 봐 지금도 팽목항을 찾는다.

양승진 교사의 부인 유백형씨는 지난달 22일 홀로 진도를 다시 찾았다. 23일은 결혼기념일, 24일은 남편 생일이었다. 미역국을 끓이고 따뜻한 밥을 차려 등대 앞에 놓고 유씨는 “왜 이렇게 안 나와. 나 좀 진도에 안 내려오게 해 달라”고 바다 깊이 잠들어 있는 남편에게 소리쳤다. 지난 2월 5일 영인 아빠 박정순(46)씨도 현철이네와 팽목으로 향했다. 아들 생일을 맞아 밥, 미역국, 케이크를 바다에 뿌려줬다. “다른 유가족들은 분향소라도 가고 자식들 장지에라도 가잖아요. 저희는 갈 데가 없어 팽목항만 찾아요.” 박씨가 나지막이 심경을 말했다. 분향소에도 실종자의 영정 사진은 있다. 그러나 은화 아빠 조남성(52)씨는 “분향소 앞까지 가 봤지만 자식 생각날까 두려워 발길을 돌렸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다 막내딸을 제외한 가족이 참변을 당한 권재근씨의 형 오복씨는 아예 팽목항 간이주택에서 지내며 동생을 기다리고 있다.

허지윤(20)씨는 동생이 못 견디게 보고 싶을 때면 다윤이의 꿈을 오롯이 간직한 단원고 2학년 2반 교실을 둘러보곤 한다. 아버지 흥환(51)씨는 “하루는 휴대폰 통화도 안 되고 집 전화도 안 받아 혹시나 싶어 단원고에 가 봤더니 지윤이가 다윤이 책상에 앉아 울먹이고 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음의 근심만큼이나 육신도 지쳐가고 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뼈도 녹인다. 다윤이 아빠와 현철이 아빠는 치아 뿌리까지 녹아 내려 생니 십여개를 뽑아 냈다. 은화 아빠는 혈관이 쪼그라들었고 영인 엄마는 매일 가슴이 먹먹하고 소화가 안 돼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들락거린다. 밥 맛이 있을 리가 없을 터. 그래도 끼니 때마다 수저를 드는 건 “내 자식 좀 꺼내달라”는 하소연이라도 할 힘을 얻기 위해서다. 2월 26일부터 실종자 가족들은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흥환씨는 “당장이라도 눕고 싶지만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나마 자식들의 생전 모습을 떠올릴 때 핏기 없는 가족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속을 썩였던 다윤이는 ‘아빠 바보’, ‘아빠 껌딱지’였다. 늦은 귀가에 만취 상태로 들어오는 아빠에게 엄마가 잔소리라도 할라 치면 “우리 때문에 힘들게 일하는 아빠한테 왜 그러냐”고 편들어 주던 딸이었다. 흥환씨는 교복을 입고 재잘대는 여고생들을 보면 내 새끼를 보는 것 같아 좋다가도 딸이 생각나 금세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인양이다. 배 속에 남아 있는 시신의 뼈라도 찾아 ‘유가족’이 되고 싶을 뿐이다. 진상규명도, 보상도 다 나중 얘기다. 조남성씨는 “세월호를 건져준다고만 하면 언제까지든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박정순씨는 “자식을 먼저 찾아야 진상규명을 하고 처벌도 하고 그 다음에 보상 얘기가 나오는 건데 정부가 기본도 모르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참사 1주년 뒤 또 다시 잊히는 게 두렵다. 1인 시위를 할 때 다가와 “아직도 실종자가 남아 있느냐”고, “배를 인양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다윤이 엄마 박은미(45)씨는 “아마 1주년이 됐으니 반짝 관심을 가질 겁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직 세월호에는 우리의 딸, 아들, 가족이 9명 남아 있다.

진도=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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