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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길 떠나는 주인공들

입력
2017.05.0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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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구전 신화 ‘삼공본풀이’에는 부모와 세 딸이 등장한다. 첫째와 둘째는 부모가 원하는 대답을 해 귀여움을 받지만 셋째 가믄장아기는 부모가 듣고 싶은 말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답을 했다가 노여움을 사 산으로 쫓겨난다. 그렇게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언니는 그러나 나중에 거지가 되거나 부모를 길바닥으로 내쫓지만 가믄장아기는 숲에서 좋은 남편을 만나고 큰 부자가 됐을 뿐 아니라, 장님이 돼버린 부모의 눈까지 뜨게 만든다. 자신의 생각대로 말하고 자신의 삶을 살았더니 좋은 결과가 생긴 것이다.

▦ 민담 ‘바리데기’의 주인공인 바리데기 공주 또한 산 속에 버려져 산신령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다. 어느 날 바리데기가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산신령이 자신의 가르침만 받으면 부모를 만날 것이라 했다. 얼마 뒤 산신령과 작별한 바리데기는 실제로 엄마와 상봉한다. 신동흔 건국대 교수는 이야기 속 산신령을 ‘대자연의 기운’쯤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바리데기가 버림 받은 신세를 한탄하는 대신 자신을 잃지 않고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를 굳건하게 세웠기 때문에 엄마를 만났다고 해석한다.

▦ 주인공이 비바람과 추위가 몰아치고 야수가 들끓는 산과 숲으로 보내지거나 떠났지만 그곳에서 스스로 지혜를 터득하며 의젓하게 성장했다는 이야기는 서양에도 많다. 새 엄마의 질투를 받아 위기에 처해졌으나 무사히 목숨을 건지고 마침내 멋진 왕자와 결혼하는 백설공주 이야기도 그런 류다. 신 교수는 거친 숲에 던져진 백설공주가 넘어지고 긁히면서도 쉬지 않고 달려 일곱 난쟁이의 집에 도착한 사실이 중요하다고 본다. 주저앉지 않은 것, 이것저것 재거나 눈치 보지 않고 발길을 내디딘 것이 공주를 살렸다는 것이다.

▦ 신 교수가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에서 강조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부모가 아이를 끼고 앉아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키우려 해서는 안 된다. 마침 어린이날에 즈음해 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아이들의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초등학교 3학년의 행복감은 조사 대상 16개국 가운데 14위, 학교 성적 만족도와, 가족과 대화하거나 함께 노는 시간 비율은 꼴찌였다. 부모가 아이를 자신의 뜻대로만 키운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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