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1968년 북한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나 김책공업종학대학 체신과(무선공학 초단파 전공)를 졸업했다. 부모님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북송교포 출신이다. 졸업 이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산하 속도전지도국 선전지도원으로 근무하는 등 나름 북한 엘리트 코스도 밟았다. 하지만 “97년 황장엽 망명 사태에 충격을 받고 탈북을 결심한 아버지에 이끌려 선택의 여지 없이 99년 여름 탈북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2000년 2월 한국에 정착한 뒤 처음엔 ‘조용히’ 살았다. 전공을 살려 서울대 모바일연구소에서 일했고, 통일전문매체에서 근무하기도 한 그는 같은 탈북자 출신 여성과 결혼도 했다. 그러던 중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북한에 두고 왔던 약혼자가 심한 고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 대표는 “충격과 분노가 컸고, 나 혼자 잘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2003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라는 단체를 만들어 북한인권운동을 시작했고 200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북전단 살포에 나섰다. 이후 그는 남북한 정부에게 공히 요주의 인물로 분류됐다. 2011년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으로부터 독침 테러 위협까지 받았다. 우리 정부도 전단 살포 자제 요청을 하며 박 대표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다. 2013년에는 미국 인권재단으로부터 국제 인권상 하벨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강윤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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