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청문회 동영상 본 후
“만난 적은 없다는 뜻” 말 바꿔
최근 국정농단 파문이 불거지기 전까지는 ‘비선실세’ 최순실(60ㆍ구속기소)씨의 존재조차 몰랐다며 극구 부인했던 김기춘(77)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야 의원들의 끈질긴 질문 공세에 결국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알았다”고 말을 바꿨다.
7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는 오전부터 김 전 실장과 최씨와의 관계 추궁에 집중됐다. 김 전 실장은 “태블릿PC가 보도되고서야 알았다”며 수십 차례 의원들의 질문에 “최씨를 모른다”는 답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최씨를 알았다면 연락을 하거나 통화라도 한 번 하지 않았겠냐” “검찰에서 조사해보면 다 알 것”이라며 의원들의 질문을 맞받아쳤다.
하지만 밤 10시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 동영상을 제시하자 “최순실이란 이름은 알았지만 만난 적은 없다는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당시 청문회 동영상에는 “최씨를 서면 조사하고 육영재단 자료를 토대로 조사했으며 최씨 관련 자금 출처 등을 집중 조사했다”는 당시 한나라당 검증위원회 간사의 음성이 흘러 나왔고, 화면에는 당시 박근혜 후보 법률지원단장을 맡고 있던 김 전 실장의 모습도 담겼다. 이 영상은 네티즌이 발견해 박 의원 측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또 2014년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정윤회 문건’에도 “최태민의 5녀 최순실이라는 대목이 나온다”며 “그런데도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몰랐느냐”고 김 전 실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김 전 실장은 앞서 “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갖고 온 ‘정윤회 문건’에도 정윤회라는 이름만 나오고, 이를 보도한 기사에도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아 몰랐다”고 증언했었다.
문건과 동영상 등 부정하기 어려운 물증에 김 전 실장은 당황한 듯 “죄송하다. 나이가 들어서 착각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나이 핑계를 대지 말라는 호통이 이어지자 김 전 실장은 “최순실이란 이름은 이제 보니 못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고 마지못해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최근에 이름을 알았다는 것은 제 착각이고, 오래 전에 이름은 알았지만 정말 최순실은 모른다”고 해명했다. 박 의원은 “착각한 게 아니다. 김기춘 증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국민들이 가슴을 칠 것”이라고 질타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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