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려앉은 토요일 아침의 덕수궁은 단아했다. 한겨울 나뭇가지에는 눈송이가 잎으로 피어났다. 하늘은 깨질 듯 투명하게 맑았다. 지척의 광장은 평창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로 소란했지만 대한제국의 정궁은 아무 관심 없다는 듯 고즈넉했다. 전시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근대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에서 나는 그날 무수한 근대 신여성을 만났다.
‘신여성, 도착하다’(4월 1일까지) 전시는 1920~1940년대 한국 사회를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다. 봉건 식민사회에 스며들기 시작한 신문물의 기류 속에서 억압과 불평등과 가부장적 인습에 저항하며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외치던 ‘모던 걸’들이 21세기에 소환됐다.
나혜석(1896~1948)의 ‘자화상’(1928년) 앞에 한참을 섰다. 어두운 배경에 어두운 옷. 오똑한 콧날, 굳게 다문 입술. 유독 크게 그린 눈은 무언가를 망연히 응시하고 있다. 그 눈빛은 우울 불안 혼돈의 기운을 뿜어냈다. ‘사람’이라고 외쳤지만 거부 당한 여성 선각자가 짊어진 고단한 삶의 무게, 비운을 예견한 듯한 화가의 불길한 직관이 화폭을 뒤덮고 있다. 그 바로 옆에는 짧은 결혼생활 중 그녀가 그린 남편 김우영 초상화가 나란히 걸렸다. 정장 차림의 변호사 김우영의 표정은 근엄하고 권위적이다 못해 건방지다. 나란한 배치가 고약했다. 나혜석이 무덤에서 나와 한 마디 할 거 같다.
“조선의 남성이란 인간들은 참으로 이상하오. 잘나건 못나건 간에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 아내가 되기 전에, 어미이기 이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외다. 그러니 소녀들이여, 깨어나 내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라.”(잡지 삼천리 ‘이혼고백서’ 발췌, 1934년)
조선 남성의 이중의식을 통렬히 까부수고, 여자도 첫째로 사람임을 만천하에 웅변하고, 유부녀가 당당하게 연애를 한 대가는 혹독했다. 세상은 손가락질했고 작품도 외면당했다. 나혜석은 52세에 행려병동에서 사망했다. 그녀를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대를 앞서간 죄였다.
8일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흑인 최초로 평생공로상을 받은 오프라 윈프리는 이렇게 연설했다. 이 연설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단박에 차기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여성들이 지금까지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게 맞서 진실을 말하려하면 아무도 듣지 않고 믿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Time’s up). 이 자리를 지켜보고 있을 소녀들에게 새로운 날이 왔음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두 여인의 외침이 백 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중첩된다. 그들은 둘 다 남성과 권력에 저항했고 새날을 갈망했다. 경희(나혜석 소설 ‘경희’, 1918년)는 노라와 엠마(플로베르 소설 ‘마담 보바리’)의 후예이며, 오늘날 ‘82년생 김지영’과 강남역 10번 출구의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의 선배이며, 타임지가 2017년에 선정한 올해의 인물 ‘침묵을 깬 사람들(Silence Breakers)’의 원조 센언니 걸크러쉬다.
역사는 흘렀다. 그러나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의 투쟁은 별반 변하지 않았다. 세상의 구조가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있는 한, 미투(Me Too)가 과거완료형으로 기억될 날이 올까. 아직 새날의 광명은 오지 않았다. Time isn’t up.
한기봉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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